오늘 우리는 손을 맞잡고 울었다. 울지 말자던 어제의 약속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까맣게 지워져 버렸다. 누가 지나가건, 쳐다보건 상관없었다. 흐르는 눈물이 마스크에 고였다. 거추장스러워 벗어버렸더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내렸다. 며칠 전까지 잘했어,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마음은 정직했다. 흘러내린 감정이 말라 눈가가 당길 때까지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어. 돌아오려고 아등바등했을 생각하니까….”
“내려놓고 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 내려놓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이들 맡길 시터 구하려고 새벽마다 검색하고 알아봤는데, 잘 안 됐어. 딸이 일하고 싶다고 하면 친정 부모님은 몸이 부서져도 아이들 봐주겠다고 하시겠지. 근데 그거 못 할 짓이잖아. 자식이 돼서.”
석 달 전, 친구는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쓰려고 남겨뒀던 3개월을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두 아이를 돌봐주던 친정 부모님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더는 아이들을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코로나도 한몫을 했다. 지금이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확진자가 나와도 원을 폐쇄하지 않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시때때로 폐쇄 공지가 날아들었다. 가끔 함께 밥을 먹을 때도 휴대전화가 울렸다. 친정 부모님과 통화를 마친 후에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숟가락을 내려놨다. 도망치듯 출근, 쫓기듯 퇴근. 일과 가정의 균형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래, 가서 해결하고 다시 돌아와. 기다릴게.
도망치듯 출근하고 쫓기듯 퇴근하던 날들. 내게도 있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산을 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비탈길을 걸었다. 이미 단단하게 굳어 감각을 잃은 두 다리를 일정한 속도로 움직여야 했다. 멈춰 서는 순간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할 것만 같았다. 늘 험한 건 아니었다. 숨이 턱까지 차서 이제 더는 못하겠다 싶었는데, 어느새 경사가 완만해지고 걸을 만한 평지가 나왔다. 그렇게 할 만하다가도 저 멀리 또 비탈길이 보였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자라면 자라는 대로 한 번씩 위기가 찾아왔고 이겨냈다 싶은 순간 또다시 내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그럴 때면 내려놓고 싶었다. 일과 가정, 두 가지를 꽉 쥐고 놓지 않으려다가 내가 먼저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휘청일 때마다 친구는 말했다. 우리 꼭 끝까지 같이 다니자고. 서로 의지하면서 버텨보자고.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일해야 사는 사람들이라고. 내게 건네는 말이기도, 스스로 다잡는 말이기도 했다. 이 말들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페이스메이커가 돼주겠다는 다짐이었으니까. 우리는 다정하고도 단단한 이 말을 참 자주 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내린 결정인지 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도 안다. 지난 석 달을 어떻게 보냈을지 안다. 있는 방법, 없는 방법 찾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안다. 머리로는 안다. 다 안다. 다 아니까 따지지 못했다. 따지고 싶었지만, 너무 잘 알아서 따지지 못했다.
‘네가 말했잖아. 나더러 먼저 그만두지 말라고 그랬잖아. 끝까지 버텨보기로 했잖아.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며. 일해야 할 팔자라며. 먼저 그만두는 게 어딨어!
…
…
그동안 고생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