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방구석 여행

by 다만하

올해는 5월 초 연휴가 길었다. 직장인이 나로써 5월 1일 노동절도 쉬었고, 4월 30일 쉬었고 5월 2일만 백업업무로 휴가를 내지 않았으나, 어떻게 보면 연달아서 7일 가까이 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아이가 없다는 가정 하에 긴 연휴 또는 휴가면 보통 여행을 알아보기 시작하는 편 같다. 아무래도 보통 월~금 , 9. to 6 로 고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아서 장기로 쉴 수 있다면 가능한 여행을 고려하고 가용 시간, 함께 가는 사람 상황에 따라서 여행을 떠나거나 사는 곳 근처 나들이, 혹은 약속 등으로 시간을 채우는 것 같다. 올해 상반기에 계획했던 장기 휴가로 발리를 다녀오고 설에 삿포로를 다녀왔고 번아웃이라고 쉬면서 바람쐬러 돌아다녀서 여행의 갈증이 없어서 아깝다는 생각 없이 온전히 연휴를 집과 아지트, 카페를 가는 정도로 채웠다.


이 기간 동안 방 구석 구석(?) 살피면서 집에서 꽤 오랜시간을 보냈다. 이전에는 시간 아까워서 억지로 해야할 집 정리를 시간이 약간 남아돈다(?)는 느낌으로 하루 이틀 내내 일정 없어서 집에서 청소하면서 찬찬히 나의 흔적을 이모저모 다 정리했다.


옷 정리 부터 시작했고,겨울옷을 팔 다친 4월에 많이 집어 넣긴 했는데, 마저 더 정리하고, 얇은 옷을 꺼냈다.가족들 전체 이불 빨래도 하고, 방정리를 하면서 약간 구조도 바꾸었다. 그렇다고 크게 바뀐 건 아니지만 좀 더 물건이 쌓인 느낌은 줄었다. 코로나 시기에 독립했다 집에 들어오면서 짐도 늘고, 내 방의 가족의 짐도 존재해서 공간 대비 짐은 많은 것 같아서 늘 좀 답답한 느낌이 있었는데, 구조를 바꾸면서 답답함을 좀 덜은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가방도 한 번 훓어보고 에코백도 빨고, 빅사이즈 인형들도 깨끗하게 빨았다. 겸사 겸사 제습제를 어떻게 담아 둘지도 고민해보았고(생각해보니 아직 마무리 못 했다..ㅎㅎ) 책방은 이미 있는 박스와 책들을 좀 가지런히(?) 정돈해서 쌓았다. 욕조에서 배쓰밤도 하면서 욕실도 정리하고, 청소솔을 달아둘 고리 등을 설치했다.( 엄마는 뭔가 바뀐게 더 싫다고 했지만;;) 주방 정수기 필터도 갈고, 신발도 정리해서 세탁도 하고, 여름과 겨울용 신발을 바꾸어 박스에 담아두었다. 아 신발을 다 꺼내서 정리하려니 힘들어서 내 신발이 있는 곳만 일단 청소했다는 것은 살짝 함정이다.ㅎㅎ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가고 집에서 눈을 뜨고 살피면 살필 수록 할 일이 투성이라서 어디서 멈춰야하나, 하기 싫거나 피곤해진 순간인가 고민이 들었다. 독립해서 혼자 살 때보다 살필 곳이나, 공용 공간이 많아서 내 옷 정리를 넘어가니 귀찮아져서 멈추고 그 다음날 다시 정리하려고 보면 바닥에는 머리카락은 왜 그렇게 치워도 끝이 없는지 새로 무수히 떨어져있고, 먼지도 더 보이니까 정말 집안일과 청소는 끝이 없다는 생각이들었다.


엄마가 연휴 동안 제주도 여행을 가서 아빠 아침을 챙기면서, 오랜만에 조리가 아닌 요리(?)도 했었다. 대단하지 않은 자취할 때 해먹은 간단한 레시피 위주였지만, 오랜만이라서 꽤 재미있었다. 회사 다니면 평일에는 거의 회사에서 먹거나 약속을 가고, 주말도 아침을 먹고 보통 약속이나 일정으로 외식하게 되다 보니 집에서 밥을 자주 먹지도 않으니 요리 할 필요가 거의 없으니까, 평상시라면 귀찮다고 느꼈을텐데 뒤에 일정 없는 편안한 상태여서 그런지 재밌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긴 연휴 동안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평상시 살피지 못한 것들을 살필 수 있었다. 원래도 물욕이 크진 않았는데, 갈수록 물건을 더 갖고 싶다는 욕심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유'하는 것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걸 사고 선물을 받아도 제 때 쓰거나 먹지 않으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유행이 지나서, 유통기한이 지나서 잘 소비할 수 없는 걸 너무 많이 느꼈고, 독립하고 본가로 들어오면서도 내가 알지도 못하고, 관리도 못하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것을 많이 느껴서 이제는 있는 걸 먼저 좀 잘 사용하고, 관리하고, 잘 처분해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그렇지만 일상을 살다보면 내 주위에 있는 물건이나 공간을 잘 살피고 어루어 만질 시간이나 체력이 부족해서, 소홀하게 관리하는 게 아쉽다가도 바쁘다는 핑계로 무뎌지는 것 같다. 연휴 동안 방 청소, 옷, 이불, 가방, 신발 등 정리하면서 나의 흔적, 일상을 돌아보게도 되고, 나름 말끔해지는 것이 꽤나 쾌감으로 다가왔다. 연휴를 멀리 여행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서 아쉬운 마음도 조금 들면서도, 뭐 어떤가, 나만의 방구석 여행 덕분에 앞으로의 일상을 깔끔하고 정돈되게 보낼 에너지도 채웠으니 충분했던 것 같다.


아침 산책 후 과일도 사고, 잠깐 후다닥 끓인 만둣국ㅎㅎ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0대 여자에게 소개팅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