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만하 Sep 04. 2021

집에 있으면 보이는 것들, 엄마


나는 IT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약 9개월 정도 원격근무로 집에서 일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재택근무를 매우 길게 하고 있다. 


이전 글 에서 재택근무 하면서 외부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장점이 더 많다고 적은 적이 있다. 


이 전에도 눈에 밟히곤  했지만, 요즘 들어 집에 있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 요리와 설거지

아침은 부모님과 살고 있어서 엄마 찬스가 있다만..혼자 빵이나 요거트를 먹곤 해서 뭔가 썰고, 볶고 준비해서 챙겨먹진 않는다. 굶지 못하는 편이라서 점심, 저녁도 다 챙겨먹는데, 한 끼 이상은 꼭 제대로 만들어서 배불리 먹으려고 노력 한다. 물론 국과 찌개를 끓이고 그런 건 하지 않는다(혹은 못한다.) 

다만 직접 가볍지 않은 한 그릇 요리 만들어서 먹는데, 혼자 한 그릇 먹고나서 마무리로 설거지 해야 하는게 너무 귀찮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냥 치워야 한다는 사실이 좀 귀찮다. 그래서 그런지. 설거지 하는 엄마가 눈에 더 들어오는 것 같다. 엄마는 매일 최소 두 세 번은 자기가 먹지 않은 나와 아빠 몫까지 산 떠미 같은 설거리를 늘 해왔다는 것. 그리고 엄마는 매일 자기가 먹지 않아도 혹은 자기 몫 이상의 음식을 늘 만들어 온 것이 느껴졌다. 나랑 아빠가 엄마한테 어떤 특정 음식을 해달라, 배고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알아서 챙겨먹으니, 안 먹으면 사 먹어도 되고, 음식에 까다롭고 그런 편이 아니다. 


그치만 엄마가 스스로 어쩌면 책임감에 누군가는 배고플테니까, 먹을테니까 하면서 늘 요리하며 음식을 채워두고 있다는 것들이 느껴진다.


그 전에도 분명 알고 있었지만, 더 자주 더 눈에 보이고 있다. 


엄마가 준비해준 아침 일부, 과일 조차 씨를 제거해야 하고 썰어서 냉장 보관해야 한다니



둘, 빨래



세탁기만 있으면 빨래가 되는게 아니었다. 손빨래하는 것도 있고, 드라이 맡기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정말 피곤한 일이라는 게 더 보인다.


일단 세탁기에 돌리고, 널고, 개야한다.. 여름이니까, 운동복도 그렇고 자주 샤워하니까 수건도 점점 많이 나온다. 그리고 겨울,봄 옷 정리하면서 드라이 맡기고, 이를 픽업 시간에 맞춰서 챙겨와야 하는 것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 눈에 보인다.


혼자 살아본 기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는 나만 챙기면 되었다. 세탁기로 돌리거나 혹은 대부분 손빨래로 해서 대충 헹구고 널었다.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사니까 빨래도 내 1인분만 하면 되는게 아니다. 수건도 양말도 세 배 이상이고 옷을 개서 가져다 놔야 하는 곳도 내 방으로 직행해서 되는게 아니다. 화장실, 안방 화장실,내방, 양말 서랍장 등 어렵진 않은 일이지만,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라는게 눈에 점점 더 보인다.



셋, 머리카락과 청소기



내가 머리가 정말 많이 빠지는 편이라서, 전에도 아침 저녁으로 내 방만 쓸곤했다. 지금은 점심이나, 퇴근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 주방도, 거실도, 내 방도 눈에 보이는 머리카락을 따라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 그 전에는 집에 자주 안 있으니까 출퇴근 할 때 보고 말았는데, 하루종일 집에 있으니까, 머리카락이 하루 종일 보인다. 안 보이면 안하겠는데, 보이면 해야 할 것 같다. 뭐 엄청 허리나 다리가 아픈 건 아니니까, 나름 쉬운 레벨의 집안일이긴 하다. 한편  엄마가 혼자 청소기 돌리는게 상상되었다. 주말에 간간히 나도 혹은 아빠도 도와주긴 했지만, 사실 일주일의 반의 반도 안되는 시간 정도였고, 매주 꼬박 꼬박 내가 청소기를 돌린 것도 아니었다. 청소기와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자주 보이는 걸까.




넷, 냉장고 


뭘 해먹고 싶어도, 해 먹을 재료가 있어야 뭔가 만들 수 있다. 냉장고 속 재료를 생각해서 야채,채소를 사거나,  온라인 주문을 한다. 그래서 재택근무로 외식비는 줄었지만, 식비는 더 상승했다..^^  TMI지만 엄마는 내가 결제 서비스 관련한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온라인 쇼핑을 하지 못한다. 10년 넘게 배워야지 하면서, 하지 못한다.(뭐 내가 잘 안 알려줬다고 하는데 나는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집에서 필요한 생수나 과일, 고구마 등 일부는 박스째 내가 온라인 주문한다. 그렇지만, 한 봉지, 한 바구니씩 사는 야채, 채소, 생선, 고기 등은 엄마가 직접 보고 산다. 온라인 주문하자고 하면, 괜찮았던 적도 있지만, 실패하기도 하고, 기대 이하이기도 하다 보니까  온라인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내가 사는 것보다 엄마의 지분이 훨씬 높은 냉장고의 80% 이상은 엄마가 직접 사다 나른 것들로 비워지고 채워지고 있는 거다. 


내가 주로 사는 건, 자주 먹는 요거트,우유,호밀빵,냉동블루베리,케일 정도.. 가끔 필요한 두부, 파프리카,달걀 야채 등은 온라인이나, 동선에 맞게 이마트나 동네 마트에 들려서 사온다. 한편 엄마는 장을 보러 일부러 퇴근 후 시장까지 들렸다가 물건을 들고 오거나, 따로 시간을 내서 장을 보러 외출한다. 즉 냉장고의 80% 이상은 엄마가 직접 사다 나른 것들로 비워지고 채워지고 있는 거다. 너무 덥고 집에 있다 보니 계속 얼음물, 물을 찾아서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했더니, 냉장고 속이 더 자주 눈에 보였다.




이렇게 까야하는 옥수수를 사는걸까..? 이제 냉장고는 옥수수가 가득 쌓인다.



다섯, 분리수거 


정말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쓰레기. 배달 음식이 시키면 더 하다. 일일히 씻는 것도 귀찮은데, 모인 쓰레기 뭉텅이를 들고 나가서 분리수거 하는 건 또 다른 일거리다. 페트병, 택배 박스만 가볍게 들고 나가는게 아니라 종합 분리수거 세트를 분리하는 건 좀  품이 들어서, 그 전에는 내가 얼마나 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출근 할 때는 무겁거나 냄새나서 안 들고 나가고, 약속 갈때도 같은 이유로 안 들고 나간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집에 있으면서 보이는 것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 외도 많았지만, 

내가 집에 있으면서 보이는 건, '엄마의 자리'의 무게와 넓이였다.


가만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의 손길, 신경, 배려 하에 준비된 거라는 것이 

더 느껴지고 고마움이 커지는 요즘이다.


엄마라고 힘들지 않아서 시간, 에너지를 쓰는 건 아닐텐데..

앞으로, 엄마의 일을 덜어들이기 위해서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챙겨야 겠다.



참고 이전글 : 재택 근무 완벽 적응, 장점뿐인걸?

https://brunch.co.kr/@damanha/7 



이전 12화 5년 동안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이유가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