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독립

독립이란 '혼자 일어서는 것'이다.

by 다마스쿠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대학 입학 전까지 시급 4000원을 받으며 명동의 대형 브랜드 옷가게에 알바를 구해 하루 10시간 주 6일을 일했다.


'안 하면 안 되겠니 힘들 텐데...'

에 내 대답은 '집에만 있음 뭐 해, 나가서 활동적이게 일도 하고 그래야지 심심해!'


그때부터 엄마는 내게 통금을 걸지 않으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나를 어른으로 생각하시고 원래도 전혀 잔소리가 없으셨지만 더더욱 나를 존중하고 자랑스레 여기셨다.

나는 그때를 어찌 보면 내 1차 독립의 순간이라 생각한다. 그 후, 매년 방학 때마다 과외를 하고, 학기 중에도 과외 아니면 식당에서 서빙을 본 적도 있었다. 감사하게도 생활비가 아닌 용돈벌이였지만 적은 돈이라도 벌기 시작하자 독립을 하고 있다는 마음에 뿌듯하기만 했다.


파라과이에 오자 나는 다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처럼 쫄래쫄래 남편과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42년 전에 파라과이를 오신 배테랑으로, 현지 언어도 아무 문제 없이 잘하시고 본인 사업을 이민오신 직후부터 해나가진 여장부다.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너무나 독립적이고 활동적인 어머니 덕에 남편에게는 수동적이고 집에만 있는 부인의 모습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요리 청소 운동 관리, 뭐 하나 빠지지 않는, 그야말로 유니콘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파라과이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셨다.


영주권 서류부터 친정엄마가 한국에 계셨기에 내 모든 살림 하나하나를 다 챙겨주시고 도와주셨다. 슈퍼와 시장을 가로지르며 어머니는 내게 하나하나 전수해 주셨다. 그리고, 월급을 주시고 핸드폰비까지 내주셨다.

내가 하는 유일한 일은 집세와 전기세를 내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챙겨주는 게 너무나 당연한 어머니는 걱정하지 말라며 전기세까지 내주고 과일장까지 매주 봐주시겠다 하셨지만, 난 독립을 원했다.


일단 월급을 현금이 아닌 계좌이체로 바꾸기로 했다. 현금 들고 다니면 위험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핸드폰도 5년째 사업체를 이어받을 때 어머니 명의에서 내 명의로 옮겼고, 신용카드도 우리 회사에서 일했기에 내 손으로 고용증명서를 만들어 내 이름으로 냈다. 장을 직접보고, 병원도 직접 모든 것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하자면 그래, 일이 많다! 그러나 이제 우리 부부는 더 이상 독립 못하고 어머니의 도움만 기다리지 않게 됐다. 말하자면 그래, 부모로부터 '두 번째 독립'을 한셈이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어머니는 두 손 들어 축하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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