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독립적이었던 나를 지켜준 남편의 미션들
말을 못 하고 운전을 못하는 내게 남편이 내게 제일 먼저 준 '미션'은 새로 구한 신혼집의 월세를 지불하는 일이었다.
당시 우리에게는 파라과이에서 신용이 없었으므로 은행 계좌, 또는 신용카드는 당연히 없었다.
시어머니가 주셨던 신용카드는 크리스마스에 친정으로 지마켓을 한번 결제한 후로 사용정지가 되더라.
계좌가 없는 우리 부부는 매달 월급을 현금으로 받아 모든 것을 현금 결제 했는데, 낮에 일을 하는 남편은 내게 월세를 내러 걸어서 10분 거리의 은행 미니창구에 가서 내라고 했다.
집 밖에 걸어서 처음 나갈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위험하다는 말에 남루한 옷에 꾸미지 않은 채, 운동화를 신고 돈을 소중히 넣은 작은 가방을 몸에 붙여 걸어갔다.
눈부신 햇빛, 고르지 않은 1미터 남짓의 부서지고 좁은 포장도로를 조심스레 걸어 도착한 슈퍼에 딸린 간이 은행 창고에서 종이에 집주인의 이름과 계좌번호, 현금을 주고 영수증을 받은 후 사진을 찍어 보내면 끝나는 그 일을 나는 은행 계좌가 생기기 전까지 해나갔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나는 그 일을 해내고 집에 걸어 돌아가던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드디어 뭔가를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낸 것이다.
늘 독립적으로 고등학교 시절 유학 때부터 모든 일을 혼자 해오던 나였기에 속수무책으로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흡사 고문 같은 일이었고, 그도 그것을 알았기에 내가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내가 가르치고 습득할 수 있게 도와주고 가르쳐주었다.
운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첫아들이 태어나고 6개월 후부터 그는 나를 운전학원에 등록해 주었고, 직접 도로주행을 도와주었다. 우리의 2년 결혼기념일이 되자, 남편은 내게 첫 차를 선물해 주었다. 운전을 하고 '자유롭게 네가 가고 싶은 곳에 가라' 며 나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었다. 그는 나를 절대 가둬두지 않았고, 늘 새로운 것을 도전할 수 있게 자극을 주었다.
파라과이로 예전에 이민온 사람들 중에는 아직까지 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남편이 위험하다고 못하게 했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안전 부분에서 취약했던 시대였기에 부인들에게 차를 몰지 못하게 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하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수밖에 만든다면 그것 또한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처음에 교류할 수 있는 친구들은 만나고 싶었지만, 누구를 만나려면 교통수단이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기에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이제 나는 벌써 운전 7년 차. 운전을 하고 은행을 가고, 수금을 하러 다니며, 우리 회사의 모든 재정 관리를 맡아서 한다. 두 아들의 픽업은 물론 학부모 회의에도 무리 없이 참가하게 됐다. 그리고 이 모든 자유와 관리가 가능했던 시점은, 파라과이 도착 3개월 만에 은행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던 그 발걸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