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유럽여행
그런 건 왠지 신혼여행이나 배낭여행이어야 할 것 같았다.
이탈리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것은 2년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시간은 7개월 남짓 남았다.
다행히도 생활비를 아낄 수 있고, 재료비가 덜 들기 때문에 돈을 모을 수가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교환학생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유럽에서 살 수 있는, 그리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은 되기 어렵단 걸.
그 당시 목표는 4학년을 뉴욕으로 돌아가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해서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활이 시작되면 유럽으로 오는 비행기 표도 구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도 너무 박봉인 걸 알기에, 나는 유럽 여행을 지금 해야만 한다(?!) 후후..
그동안 아끼고 아낀 돈으로 피렌체에서 살 적엔 가까운 피사, 시에나, 페루지아, 아시시등을, 그리고 조금 멀리 가장 저렴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와 로마, 나폴리, 폼페이를 다녀왔다. 이탈리아는 여행하기가 굉장히 쉽게 되어있었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수많은 기차 중에 하나를 골라타면 어디로든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피사의 사탑을 보러 갔을 때 2009년 당시 5.9유로였던 기차표... (약 만원 정도 일 것이다).
느린 기차, 빠른 기차 중 느린 기차 (멈추는 곳이 훨씬 많은)를 타고 달려달려 도착한 붉은 노을 안의 베네치아...
집에서 삶은 계란과, 1유로짜리 빵 한 줄과 1.5리터짜리 물 한병 들고 올라탄 기차 안은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스마토 폰도 없던 시절, 아이팟과 책 한 권이면 충분한 여행길이었다.
그 해 겨울엔 친구 다섯 명과 크리스마스에 저가항공을 타고 바르셀로나로 떠나서 5박 6일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1살의 가벼운 가방과 가벼운 몸이 있었기에 어디로든 쉽게 여행이 가능했다.
그리고 난, 이제 못 올 것만 같은 이 유럽생활의 종지부를, 2주 동안의 유럽여행으로 마무리하려 계획했다.
6월에 3학년 수업을 모두 마치고 미국으로 갈 짐을 전부 싸놓은 다음, 작은 캐리어 가방 하나로 혼자서 10개의 도시를 여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시작한 한국식당 알바였다.
이태리에서 사는 한국사람이 활동하는 카페에 들어가서 알바자리 있나 찾아봤더니 우연히 나온 구인공고를 보고 밀라노의 하나식당에 아르바이트생으로 합격했다.
그 당시 사장님도 20대고 아르바이트생들도 20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맛있고 깨끗하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몇 달을 근무하고 (당연히 나는 내년 6월까지 아르바이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전에 말씀드렸다) 돈을 모아 꿈에 그리던 유럽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알바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브런치북에서 풀어낼 것 같다.
꿈에 그린 유럽여행...
여자 혼자 간 것치곤 너무 안전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다녀왔다.
그 당시 혼자여행 현실적인 팁 (기억하면 좋은)이라면:
1. 여성전용 숙소를 구했다.
- 그 당시 호스텔에서도 당연히 지냈지만, (5유로) 여성전용을 찾아서 머물었을 때 굉장히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인이 운영하는 하숙집 숙소를 구했다. 물론 리뷰를 보고...! 아침제공을 한국밥으로 해주셨기 때문에 정말 잘 먹었고, 여행하는 곳의 여러 명소를 추천해주시기도 했다.
2. 투어를 찾았다.
- 저렴한 현지 영어투어그룹과 아침 일찍부터 점심께까지 함께 다녔다. 공짜이며, 팁만 내면 된다고 했는데, 당연히 내가 낼 수 있는 만큼 (20유로) 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걸어서 모든 도시를 구경했고, 혼자온 다른 여행자들과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 오후 6-7시면 숙소로 돌아왔다. 절. 대.로. 혼자서 늦게 다니지 않는다.
동행을 만난 그리스 하숙집 (남녀 섞여 5-6명)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혼자 일 때는 저녁을 일찍 해결하고 무조건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일찍 자고 다음날 새벽같이 나갔다. 유럽은 한국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여자고 아직 어렸기에 더더욱 위험할 곳이나 위험할 짓을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와인 한잔, 맥주 한잔 음식과 먹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술도 마시지 않았다.
4. 짐 챙기기
여권의 복사본, 학생증 복사본을 2부 만들어 따로 챙기고 돈도 현금을 나누어 다른 가방에 넣었다.
가방은 최대한 가볍게, 속옷은 세벌 넣어 매일 빨아 입었다. 옷도 반바지 2개, 티 3개를 가져가 빨아 입었다. 모자 1, 선글라스는 너무 뜨겁기 때문에 챙겼다. 모든 옷과 용품은 값이 전혀 나가지 않는 것들로 전부 챙겼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 찍는 것도 아니기에... 운동화 한 켤레와 숙소서 쓸 쪼리 하나를 챙겼다. 일기와 책 한 권과 디지털카메라, 충전기, 세면도구 (+잘 마르는 수건 2장). 이것이 내 짐의 끝이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며 20일간의 유럽여행을 즐기고 뉴욕에 돌아갔다. 그리스, 헝가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여섯 개 국가의 10개 도시를 경험한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리고 전 이야기 들에 쓴 것처럼 미국생활을 이어간 후,
인생의 파도에 휩쓸린 듯...
나는 파라과이라는 곳으로 떠나게 된다.
다음 화의 이야기는 남미의 심장, 파라과이로 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