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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넌

효자손에게 바칩니다.

by 사랑의인사

우리 집 세탁기는 통돌이다.

14년 전 신혼 가전 세탁기로 14Kg짜리 통돌이 세탁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통돌이 세탁기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21Kg의 새로운 친구가 우리 집의 든든한 세탁기가 되었다.

물이 많아야 깨끗하게 빨래가 된 것 같은 느낌에 통돌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키가 작은 나에게 세탁 후 빨랫감을 꺼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까치발은 기본이고 노란 목욕 의자를 놓고 세탁이 다 된 빨랫감을 꺼내기도 했지만 번 미끄러져 다칠 뻔했다.


그래서 선택한 다*소표 핑크 왕포크. 마치 삼지창처럼 생겨 애용하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이건 플라스틱이라 목표물에 제대로 안착되지 못하면 내부 통돌이통에 부딪혀 부러지기 일쑤였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부러지지 않고 목표물에 잘 안착하며 완벽하게 목표물이 올라오게 만드는 그 무엇가를 말이다.

이때 내 눈에 딱 들어온 건 바로 남편의 필수템인 '효자손'이었다.


'효자손'

누가 이리 이름을 잘 지었을까.

등이 가려운데 내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이 없을 때, 자식보다 낫다는 그 '효자손'.

수학여행 때 부모님께 선물로 빠지지 않고 구입했던

효자손.

효자손은 등 긁어주는 걸 좋아하는 남편의 최애템인데

그런 효자손이 이렇게도 쓰이는구나.


자, 어서 오라. 효자손아.

기다란 키와 적당하게 구부린 손으로 목표물들을 하나하나 잘 꺼내준다.

어쩜 이리도 세심하게 양말 한 켤레, 팬티 하나,

손수건 한 장까지 꺼내주는지.

효자손의 역할은 무궁무진하리.


깨끗하게 세탁된 세탁물을 꺼낼 때 키 큰 남편과 나를 훌쩍 뛰어넘은 큰 아이를 이제는 목청껏 부르지 않아도 된다. 독립적인 주부로 난 효자손을 찾겠어.

효자손아, 우리 집 세탁기가 드럼 세탁기로 바뀌지 않은 이상 너의 힘이 꼭 필요하구나.

나에게 넌 다른 의미로 효자란다.

오늘도 효자손과 함께 깔끔하게 세탁을 마무리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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