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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의인사 Oct 15. 2024

나이 마흔에 비로소 버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버리기 시작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버린다는 건 미련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그리고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


나는 결혼 14년 차의 주부이다.

신혼 초에는 나의 다른 글에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요리도 잘 못하고, 살림도 잘 못했기에 늘 부족함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이쁘게 꾸미고 사는 다른 신혼집처럼 

이것저것 붙여보고 가구들을 배치해 보며 어설프지만

신혼집만의 알콩달콩함을 연출하려고 참 많이도 애썼다.

하지만 타고난 정리 꽝. 센스 꽝인 내가 뭘 얼마나 이쁜 인테리어를 했을까.

특히 아들 둘을 낳고 키우며 정리정돈까지 하는 건

내 체력으론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제법 크고 나니 이젠 제법 우리 집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버리지 못한 아이들의 변신 로봇 장난감, 아이들에게 열심히 읽어주었던 책들, 오래된 집안 살림들이 눈에 자꾸 밟히기 시작했다.


'거실에 있는 책장들을 아이들 방에 하나씩 놓고, 소파는

이리로 옮기고, 아이들 이층 침대는 분리해서 각자 방으로

옮기고 책상은 옮기면..'

이렇게 정리를 하고 집이 깨끗해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왜 이리 설레던지..

이래서 정리왕들이 정리를 하는구나 싶었다.


그전엔 아이들을 키우면서 버린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 필요할 거란 미련 때문에 감히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조건적인 버림이 아닌

헤어짐을 통해 새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먼저 결혼 때 장만한 퀸 사이즈의 침대와 4인용 식탁과 이별했다.

남편의 잠자리 취향을 존중해서 슈퍼 싱글 침대 두 개

나의 취향을 존중한 6인용 식탁으로 시작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방을 분리시켜 주었다.

그동안에는 한 방에서 이층 침대로 함께 잤던 아이 들었지만

이층 침대를 분리해서 각자 방을 하나씩 주어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거실에 있던 큰 책장 두 개를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가졌다.


제법 자신들의 몫을 하며 무거운 침대와 책장을 옮기는

아빠의 든든한 짐꾼 파트너가 아이들을 보며

'그동안 나의 체력과 영혼을 갈아 넣은 보람이 있구나..'


버릴 물건들이 왜 이리 많던지 쓰레기가 한가득이었다.

언젠가는 쓸 거야 하며 두고두고 보관했던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고 요즘 핫한 다이소 물건들로 정리하였다.

정리한다고 밤마다 유튜브를 보며 정리에 열의를 불태웠다.

응용은 부족해도 학구열은  높은 나 아닌가.


정리 안 된 집을 보며 한 번도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던 남편. 오히려 나보다 이것저것 치우며 이번 대정리 시간들에 온 힘을 쏟은 남편.

결혼을 하면서 처음부터 모든 것들이 갖춰진 곳에서 출발을 했다면 이런 재미를 느꼈을까?


내 인생 마흔에 접어들었다.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고, 앞으로 나의 남은 삶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마흔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우리 집 대정리 시간들은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정리를 하고 또 금세 이것저것 쌓여가는 짐들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우리 가족의 멋진 작품에 뿌듯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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