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작업일지
그리고 싶은 것은 늘 있었고, 언제든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공 또한 그리기가 아닌 조소를 택했었고 그 선택은 꽤 괜찮아 보였다. 평면 말고도 더 확장된 나의 언어가 생겨난 샘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될 수 있을 꺼라 믿어왔다. 다행스럽게도 글을 쓰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고, 그건 내 작업을 좀 더 효과적으로 보이는 데에 큰 몫을 했다. 사진을 찍는 것에도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었고 입체도 그림도 특출나진않아도 기본이상은 해내곤했다. 그런데 그런 점이 간혹 어느 한 가지만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분에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어 오히려 선택의 고민만이 늘어나게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점 또한 경계가 모호한 현대미술에선 장점이 된다. 그렇게 많은 가능성을 확인하고 희망적인 작가로서의 발걸음을 내딛고 싶어 준비하고 움직였다.
그러던 중에 꼭 여느 드라마처럼 어느 소설에서나 나오는 위기처럼 나는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을 위기에 비유한다는 게 마치 이기적이고 모성애가 결여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아이는 내 모든 것이고 무엇이든 줄 수 있을 것처럼 소중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다. 내 몫슴같이 사랑하는 아이도, 엄마의 자리도 “나” 내가 없으면 지켜낼 수 없다.
그래서 겨우겨우 찾아낸 내 책상, 내 작업공간. 조금은 느리지만 차근차근 늘어나는 작업들.
그 작업들 혹은 그 작업들이 시작되기까지의 여러 이야기들을 작업일지라는 이름을 빌려 써볼까 한다.
작업일지라고 했지만, 육아일지 같기도 하고 어떻게든 견디고 버텨보려는 생존 일지의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움직이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평온하고 평범한 날들이라 만족하고 행복했다면 좋았겠지만,
아무 일들이 일어나지 않고, 모든 일이 내가 아닌 “엄마”나 “아내”로만 사는 것이 꼭 “나” 는 없어진 것만 같아 불안하고 참을 수 없을 것 만 같았어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숨을 곳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아이의 방한 켠 마련한 1평 남짓한 작업 책상에서 그간 쉬지 못한 숨을 몰아쉬며 기록을 하기 시작한다.
몰아쉬는 숨이 조금은 평온해지고,
작업을 하며 숨 쉬는 것이 다시 일상의 한 부분으로 돌아온다면, 그때가 돼서야 “엄마” 나 “아내” 로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덧. 그런데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마음잡기 위해 시작한 작업일지이거늘 오랜만에 글쓰기에 빠져 좀처럼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