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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D Aug 22. 2021

짜장과 짜증의 관계

짜증날 땐 짜장입니다

시간은 밤 10시

오랜만에 Zoom을 켰다.

육퇴를 하고 친한 친구끼리 모이는 자리라 부담 없이 생생한 얼굴(쌩얼)로 온라인 만남에 접속한다.

그런데 줌 입장 전 노트북 카메라에 비치는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면 속 얼굴은 누리 끼끼 하게 떠 초췌하며 잔뜩 짜증이 배어 있었다.


어떻게든 화면 속 얼굴을 긴급 소생시키고자 조명도 더 밝게 해 보고 필터를 이용해서 입술색도 빨갛게 바꿔 보았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친구들에게 노트북 카메라 위치가 하단에 있어 두 턱이 세 턱된 초췌한 얼굴일지라도 이해해달라는 아주 긴 변명을 늘어놓았다. 함께 회의에 참여했던 쌍둥이 언니가 말했다. 이제는 우리도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라며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마스크 속 숨겨놨던 얼굴에는 지친 짜증이 묻어 있었고 그게 요즘의 나였다. 짜증이 얼굴에 영구 박제될까 두려워 되는대로 급히 볼펜을 입에 물고 위스키를 외쳐본다.


그렇게 온통 얼굴에 대해 생각하다 다음날 점심으로 짜장을 먹 되었다.


'짜장? 짜증? 모음 하나 차이인데 많이 다르네.'라고 중얼거리다 뭔가 적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짜장과 짜증에 대해서 랜덤 워드 기법으로 정리해보면 뭔가 재미있겠는데?

근처에 있던 A4용지 한 장과 펜을 들어 떠오르는 대로 써보았다.


 *랜덤 워드(Random words) 기법 :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에서 강제적인 자극을 통해서 독특한 아이디어를 추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제연상도구(참고링크)



1) 먼저 짜장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았다.


대한민국 대표 메뉴,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전국 어디에서도 먹을 수 있다
면과 밥 중에 선택이 가능하다, 곱빼기도 선택 가능
종류가 다양하다. 간짜장, 유니 짜장, 삼선짜장, 사천짜장, 쟁반짜장
브라운, 블랙
짬뽕이 먹고 싶어진다
맛있다, 먹다 보면 느끼하다, 고춧가루 토핑 팍팍
불면 맛없다
졸업식
단무지와 생양파는 사이드 필수 반찬
god의 어머님께
재료 : 춘장, 양파, 돼지고기
배달통
짜파게티, 짜짜로니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2) 짜장에 대해 떠오른 내용을 기반으로 짜증에 대해 고민되는 질문을 던져본다.



"짜증이라는 감정이 올라올 때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3) 질문을 떠올리며 짜장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짜증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어본다.



대한민국 대표 메뉴,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전국 어디에서도 먹을 수 있다.

 - 누구든 짜증이라는 감정은 있다. 나를 나타내는 대표 감정으로 선택할 것인가?


면과 밥 중에 선택이 가능하다. 물론 곱빼기도 선택 가능

 - 짜증이 올라올 때 좋은 기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선택해보자.


종류가 다양하다. 간짜장, 유니 짜장, 삼선짜장, 사천짜장, 쟁반짜장

 - 짜증도 의식적으로 내지 않으려고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브라운, 블랙

 - 짜증 나있을 때 얼굴색이지 않나 싶다.


짬뽕이 먹고 싶어 진다.

 - 짜증 나면 화, 분노의 감정이 콤보로 작동한다.


맛있다, 느끼하다, 고춧가루 토핑

 - 맛있는 걸 먹으며 기분을 전환해본다. 그러다 보면 살찔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 맛있는데 살 안 찌는 음식은 없을까? 고춧가루 토핑 정도로 부담 없고 확실하게 짜증을 잡을 수 있는 게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불면 맛없다.

 - 짜증은 낼수록(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내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


졸업식 : 졸업식 최애 메뉴(요즘은 바뀌었을까?)

 - 짜증이라는 감정을 졸업시키고 싶다.


단무지와 생양파-사이드 필수 반찬

 - 짜증은 화, 분노를 필수로 따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발전시키지 말자.


god의 어머님께

 - 시어머님께는 짜증 못 낸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마흔 살이 되어서도 짜증 내는 내가 떠오른다.


재료: 춘장, 양파, 돼지고기

 - 짜증을 불러오는 재료(원인)는 무엇일까? 더위, 코로나, 집안일, 육아


배달통

 - 짜증을 담아둘 배달통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기에 담아둘까?


짜파게티, 짜짜로니

 - 짜증내기 쉽다고 쉽게 내지 말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 쉽고 간편하게 짜증이라는 감정을 전환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막상 적어 내려가다 보니 최애 메뉴인 짜장과 누구라도 싫어할 짜증이라는 감정이 이렇게도 연결되는구나 싶어 재미있다. 짜장을 떠올리며 적을 때는 더 쓰고 싶었고, 짜증에 대해 적을 때에는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기도 했고 나중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짜증의 재료들을 살펴보니 지금은 가지고 가야 하는 재료들이다.

결국 환경을 쉽게 바꿀 수 없다면 마음관리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짜증이 밀려올 때 어떻게 기분을 전환할 것인가?


예를 들면 정성껏 만든 반찬을 딸 J가 입에도 안 댈 때 짜증은 밀려온다.

"그럴 수 있지. 채소라 싫었구나. 밥이라도 먹어줘서 고맙다. 반찬은 아빠가 먹으면 되지." 하며 화내지 않고 넘길 수 있을까? 꿀꺽하고 넘겨야 한다. 그래도 남편은 맛있게 먹어줄 것이다.

짜증을 감사의 마음으로 바꿀 수 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화라는 감정으로 발전시키지 않을 수 있다.


향긋한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으면 커피 향이 금세 집 전체로 퍼져나간다.

좋아하는 라테를 만들 수도 있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핸드드립으로 맛있는 한 잔을 내려본다.

커피 한잔의 여유 속에 마음의 평안을 찾아본다.


이렇게 적고 보니 마흔의 내 얼굴에 책임을 지기 위해선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온라인 모임의 화면 속 내 얼굴은 달라질 수 있을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얼굴이 그대로라면, 좋아하는 짜장면을 먹으면서 참여해봐야겠다.



* 쌍둥이 언니가 짜장과 짜증에 대한 글을 굳이 이렇게 길고 복잡하게 쓸 이유가 있냐고 묻는다.

순간 뻘쭘한 나는 강의에 나가서 써야 하는데 잊어버릴까 봐 혼자 실습해봤다고 답했다.

그래도 짜증에 대한 통찰을 짜장에서 얻을 사람은 나 밖에는 없다고 우겨본다.



나 홀로 실습의 결과물, 짜장과 짜증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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