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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글 Jun 16. 2024

이 말만큼은 삼가라

사회생활 필수 금기어

우리는 매일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또 일상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소통의 순간들. 하지만 대화의 기술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하지 말아야 할 말, 금기어를 아는 것이다. 부적절한 한마디가 인간관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생활에서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예상치 못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때로는 한순간에 신뢰를 잃고 관계를 망가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에겐 언어에 대한 경각심과 현명함이 요구된다. 이에 오늘은 사회생활에서 절대 피해야 할 말 세 가지를 짚어보려 한다. 이 금기어만큼은 반드시 경계하며, 슬기로운 언어생활의 기술을 함께 고민해 보자.  


현명한 언어생활을 위한 세 가지 팁

1. 말하기 전 생각하는 습관 기르기 

2. 상대의 감정과 입장을 먼저 고려하기

3. 말의 파장과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기



1. "그럴 줄 알았어"


누군가 실수를 했을 때, 또는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럴 줄 알았어." 듣는 이에겐 따가운 멀이다. 하는 이는 큰 의미 없이 던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 한마디는 믿음과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에는 상대를 믿지 못하고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태도가 담겨있다. 일종의 편견과 낙인이 깔려있는 셈이다. 당사자로서는 선입견에 갇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끼기 십상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관계도 와해되기 마련이다.


이 말은 상대의 아픔과 절망에 공감하지 못하는 냉정함이 깃들어 있다. 격려와 위로는커녕 비난과 차가운 시선만이 느껴진다. 누구나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공감해 주기는커녕, 벌어질 일을 예견했다는 듯 말하는 태도는 상처를 준다.


"그럴 줄 알았어"의 이면에는 '나는 너보다 낫다'는 우월의식도 엿보인다.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듯한. 하지만 인생에 언제나 뜻밖의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겸손하지 못한 자만심은 오히려 스스로의 신뢰를 깎아먹을 뿐이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는 비난 대신 공감이 필요하다. 냉정한 평가보다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큰 힘이 된다.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 대신 "힘내"라는 말을 건네는 것. 거기에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담겨있음을 잊지 말자.


내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까?


-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이 담긴 말을 쉽게 내뱉고 있진 않나요?

- 힘들어하는 이에게 비난과 낙인을 덧씌우는 말을 한 적은 없나요?

- 상대를 존중하고 믿음을 주는 태도로 말하고 있나요?  

- 내가 들었을 때 상처가 될 만한 말을 내뱉고 있진 않나요?

- 앞으로는 어떤 말로 격려와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요?



2. "불가능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이, 혹은 꿈을 이야기하는 이에게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불가능해요." 헛된 망상이라며 일축하거나 현실성 없는 얘기라며 선을 긋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날카로운 칼처럼 도전의 싹을 자르고 의욕을 꺾어버린다.  


불가능하다는 말에는 근거 없는 단정이 깔려있다. 모든 성취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누군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냈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과 혁신의 역사가 증명하듯 불가능이란 단지 가보지 않은 길일뿐이다. 


문제는 "불가능해요"라는 한마디가 용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데 있다. 이 말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의 열정과 의지를 사그라들게 한다. 작은 불씨라도 살려주기는커녕 애초에 꺼버리니 꿈은 애당초 불붙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사원이나 청년들에겐 더더욱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지나친 몽상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꿈을 펼쳐보려는 열정마저 위축시켜선 곤란하다. '불가능'의 이미지를 덧씌우기 전에, 먼저 그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설령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가능성의 싹은 존중돼야 마땅하다.   


꿈꾸는 자를 비웃고 꺾기보다는 어떻게 그 열정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보자. "불가능해요"가 아니라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어요"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무엇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위대한 도전


인류사에서 불가능을 뛰어넘은 위대한 도전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인간은 결코 하늘을 날 수 없다던 통념을 깨고 비행기를 발명했고, 달에 갈 수 없다는 믿음을 깨고 인류를 달에 착륙시켰다. 


불가능은 늘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젖혔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 끝에 전구를 발명했다. 그때마다 "불가능해요"라는 말을 들었지만 불가능에 굴복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혁신을 일궈낼 수 있었다.


고난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이 놀라운 세상에 살 수 있다. 만약 그들이 "불가능해요"라는 말에 좌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순간에도 불가능을 가능케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이들. 그런 도전 정신이야말로 오늘날을 만든 원동력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그 일은 내 담당이 아닙니다"


조직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 일은 제 담당이 아닙니다." 자신의 책임 범위를 벗어난 일에는 선을 긋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팀워크와 신뢰를 무너뜨리는 씁쓸한 변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직에서 각자의 역할과 분장은 필요하다. 하지만 업무의 경계가 모호한 영역도 분명 존재한다. 내 일이 아니라며 발뺌하는 순간, 누군가는 책임지지 않은 채 일이 방치되고 만다. 공동체 의식보다 개인의 이해만 앞세우는 이기적 태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식으로는 어떤 의미 있는 성과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협력이 필수불가결한 현대 사회에서 각자도생의 마인드로는 성공할 수 없다. 팀이 하나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매진할 때에만 놀라운 결과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담당이 아니라는 말은 결국 무책임한 변명에 불과하다. 내 역할만 완벽하게 해내면 그만이라는 태도로는 결코 신뢰를 얻을 수도 없다. 서로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와 헌신이 없이는 어떤 관계도 오래갈 수 없다. 진정 강한 팀, 위대한 조직은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는 협력 속에서만 가능하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동료의 어려움에 손을 내밀 수 있는 태도가 절실하다. "제 일은 아니지만 제가 돕겠습니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말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한마디의 말이 사람과 조직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그만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사회생활에선 더더욱 그렇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쓰라린 상처를 남기고 관계와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럴 줄 알았어", "불가능해요", "그 일은 내 담당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 말만큼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편견과 불신, 무책임의 말들은 독이 되어 우리 앞길을 가로막을 뿐이다. 공감과 신뢰, 배려의 언어로 무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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