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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기록

《작가의 시작》이라는 책을 읽다가...

독서 기록

by 퀘렌시아

재미있는 책이다. 작가? 작가라는 생활을 하며 내가 작가가 맞나 생활 속에서 여러 번 반문하곤 한다. 작가가 뭘까? 어때야 작가 맞나? 그 정체성에 대해 종종 의문을 던지곤 하는 요즘이다. 내가 작가랑 어울리는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작가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을 잘 쓰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나 보다. 그런데, 난 그러지 못한 것 같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싶다. 일기를 매일 끄적이기는 하나, '작가'라는 말을 붙일 정도의 능력이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방향감을 상실한 느낌.

무능력해 보이는 느낌.


어려운 니체에 관해 내 매거진 글 쓰는 것도 그래서 주춤이다. 문득,

'아니, 무슨. 내가 철학 전공자도 아니면서 뭘 써. 세상에 전공자도 수두룩 빡빡이야. 이그. 누가 이런 글, 책을 내주겠어.'

하는 현실적인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온다.


글을 처음 시작할 때는 사심 없이, 말 그대로 혼자 니체의 그 어려운 글을 해석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글을 발행한 횟수가 넘어가며 조금씩 사심이 생겼다. 이왕이면 책을 내면 좋지. 하는 마음 말이다.


내가 출판사 편집자라면, 전공자들도 넘쳐 나는데, 그 어려운 니체 철학서를 전공인이 아닌 사람이 쓴 글. 책으로서 시장에 어필되기 힘들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러니, 난 지금 방향감 상실 상태다. 원래 사심 없이 쓰던 글인데 엉뚱하게 욕심을 내게 됐고, 그 욕심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은 마음에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글 쓸 동력까지 잃게 된 상황.


사람의 감정 상태는 때에 따라 다르다.

난 요즘, 내 삶의 영역 중 '작가' 분야에 대해 의기소침 상태다. 새로 책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결실을 맺고 일이 진행되고 해야 흥이 나지 싶다. 출판 투고를 했을 시, 득달같이 전화 연락이 온다든가 하면 자신감 뿜뿜이겠으나, 지금은 책을 출간해 본 경험 없을 때의 '무(無)' 상태이다.


그러니 글을 안 쓰고 뱅뱅 돈다. 갈팡질팡하고 먼 산을 바라본다. 작가로서의 정서가 있다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


이게 요즘의 내 상태다. 이런 넋두리 같은 글도 여기에다 쓸 이유를 잘 모르겠어서 쓰지 않던 상태.

이런 내가 오늘 이 책을 읽다 글을 올리고 싶어졌다. 글이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나? 내 일상이 남들에게 의미가 없어 보여도 이 글은 나름의 생명력과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생활과 관련해서 읽은 책 중, 간만에 재미있는 책이다.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고 있다. 작가들의 작가로서의 생각, 고민, 감정, 습관. 유명 작가의 유명한 말도 같이 인용하고 있어 유용하다. 오늘 여러 부분, 마음속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었는데, 결정적으로 날 멈추게 하고 이 글을 쓰게 한 부분. 그 부분을 먼저 얘기해 보겠다.



최고의 선물


가족 그리고 나이를 먹는 일에 대해 놀랍도록 재밌는 글을 쓰는 학생이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노라 에프런의 신작을 읽었는데 노라가 자신이 쓰려던 주제를 가로채 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강조하려고 일부러 전문을 대문자로 써서 보냈다).

"최고의 소재들은 전부 이미 훌륭한 작가들이 다룬 적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다면 새로운 글은 영원히 나오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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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훌륭하게 말한 것은 아니다. 설사 훌륭하게 말했다 해도 우리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새롭게 말해야 한다. _ 폴 호건 : <『작가의 시작』, 51쪽 인용>


하하, 그렇구나. 맞는 말이겠다. 이 세상에 다루지 않은 내용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글은 계속 쏟아져 나오지. 남이 내 소재를 모방해서 썼다며 노발대발하면 아주 크나큰 착각이겠구나 싶다. 같은 소재로 써도 쓴 작가에 따라 글이 달라지는 것이니까, 차분히 진정하고 내 글을 쓰면 되는 것이구나.


아까 니체에 관한 나의 글쓰기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인용한 내용과 연관된 생각을 내가 했었기에 이 글이 확 와닿지 않았나 싶다.


잠시 웃긴 얘기 하나를 하자면,

내 일일 브런치 통계를 보면 니체에 관한 글 검색 숫자가 꽤 된다. 브런치 밖, 그러니까 구글, 네이버, 다음 등의 검색을 통해서 많이 타고 들어온다. 타고 들어오신 분들이 라이킷은 누르지 않으시고 읽고 나가신다.

그럼 난 그 통계를 보며 그때그때 여러 가지 생각을 할 테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은 큰 것 두 가지다.


하나. 니체 책을 많이들 검색하는구나. (어려울 텐데... )

둘. 잉? 다들 읽고 베끼고 가면 어떡하지? 내 책으로 출간을 한 게 아니라 도용되어도 모르는데... 혹은 막을 힘이 없는데...


통계 수치로 인해 이런 웃기고 솔직한 감상이 올라온다. 그럼 통계 수치가 몇 백, 몇 천 되나 싶어 하실까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건 아니라는 말씀. 단지, 매일 꾸준히 있다는 점. 어느 날은 내 글 발행 순으로 니체 관련 글을 쭈르륵 다 훑어 읽은 걸 알 수 있는 수치를 보면... 불안해진다. 이거 이거 누가 베끼면 안 되는데...


하하

이런 불안이 올라온다면 글을 올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봐도 이런 생각이 드는 내가 웃기다. 사람의 마음속엔 모순된 다양한 감정들이 엉켜 있는 게 맞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는 나 + 철학서를 해석하는 내 글에 대한 의기소침 + 난해한 글을 스스로 독해해 내고 싶은 욕구와 오기 + 난해한 철학서에 대한 내 글을 누가 베끼지 않을까 하는 불안


이런 다양한 내 마음을 다 바라본다.

'불안하구나. 책을 내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데 아무도 책을 내주지 않을 것 같아 주저주저하고 있구나. 출판사 출판을 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은 없고 의기소침해져 글 쓸 마음이 안 드는구나.'

이 세상에 다루지 않은 글은 없다. 자기 색깔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오늘 나를 브런치 글쓰기 버튼을 누르게 한 이 책도, 사실은 다른 작가들이 무수히 다룬 스타일의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재미있다. 다른 책은 보통 수준의 재미였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 작가가 글을 잘 쓴 것이겠지. 나라는 독자에게는 말이다.


내 글을 보고 좋아할 독자가 있을 것이라는 자기 최면을 걸어본다. 그래, 그래.

어려운 철학서, 나처럼 전문가 아닌 사람이 쓴 글이 더 귀하다고 좋게 봐줄 출판사도 있겠지. 그래, 그래.

내가 글을 쓰는 작가라는 것, 맞을 거야. 책도 한 권 내 봤고, 지금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으니 그냥 계속 써. 그래, 그래.


이렇게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며 스스로를 챙긴다.

오늘 이 책은, 나에게 의미가 있다.



나는 마흔일곱 살이 돼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어떤 학위가 있어야 하거나, 어떤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해진 수순을 밟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저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_ 애비게일 토머스 : <『작가의 시작』, 47쪽 인용>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마흔일곱이다.

그래서 더 이 글이 마음에 든다.

2023.03.16.

오후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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