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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기록

《칼 융, 차라투스트라를 분석하다》1

독서 기록

by 퀘렌시아

정신의학자 융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쓴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융이, 내가 좋아하는 니체를 분석하며 쓴 글이라 호기심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내용으로 보인다. 칼 융의 다른 책들이 재미있으면서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융의 생몰 연대는 1875-1961년이고, 니체의 생몰 연대는 1844-1900년이니, 니체보다 융이 31살 어리다. 융이 태어난 1875년은 니체가 31세 때이고, 한창 바젤 대학 교수를 하고 있을 시기이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가 예뻐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려 했으나, 학문의 기본 입장에서 프로이트와 다른 입장이었기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 간 융, 그 뒤 자기만의 색깔로 인간 심리를 분석하여 분석심리학의 시조가 된 사람이 칼 융이다.


그런 융이 6년에 걸쳐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분석했으니, 융도 대단하고 그렇게 매력적인 분석 대상이었던 니체 또한 대단하다.


이 책은, 예전에 사놨었는데 이제서야 뜨문뜨문 읽는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메모해 본다.


일단, 융의 접근법과 시각이 매우 매력적이다. 나의 지적 호기심을 박박 긁어준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니체라는 인간의 심리 분석을 통해 접근한다. 차라투스트라에 대해 내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철학자의 책이었기에 바라보는 시각, 설명하는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철학적 시각, 용어,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이 다른 책에서도 나오는 느낌,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이 융의 책은 완전 새롭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각 장이 무의식의 표출 연속이며, 환상으로 이루어졌다고 융은 말한다. 니체가 꾸었던 꿈에 대한 해석이 주를 이루는 장도 있다고 융은 설명한다.


무의식, 환상, 꿈


벌써 재미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어느 누가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접근할 수 있었겠는가. 니체보다 약간 늦게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융이, 이런 분석을 했다는 게 난 감격스럽다. 이런 귀한 자료가 출판되어 내가 사 볼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감사하고 좋다.


오늘 읽은 부분은 책 초반인데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얘기한다. 조로아스터교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상징 체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융은 말한다.


니체가 여동생에게 쓴 글엔, 니체의 어릴 적 꿈에 차라투스트라가 자주 나타났다는 내용이 있단다. 이것도 새롭다. 니체와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꿈. 융이기에 가능한 이런 접근과 설명이 좋고, 어디에서도 읽어보지 못한 내용이라 재미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선택한 건, 선과 악의 대조를 고안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니체 자신이 밝혔다면서, 융도 그것을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선택한 이유로 보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융은 니체가 말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100프로 수용하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의 시각에서 니체의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하며 분석하고 있다. 그러니 니체가 이래서 이런 거다 라고 얘기해도 융이 저래서 그런 거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앞으로 종종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매우 흥미롭다.


니체에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어떤 계시처럼 압도되어 쓰게 된 글이라고 말한다. 밀물처럼 들이닥쳤다는 표현을 융은 한다.


나 역시《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마치 자동기술을 하는 사람처럼, 신들린 사람처럼, 뭔가에 압도되어 쓴 글이 틀림 없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너무도 격앙되고, 감정적인데 그렇기에 살아 숨쉬는 듯한 그 문체. 그런데 융이 이런 분석을 해 주니 '내 느낌이 맞네' 하는 기쁨이 느껴진다. 융도 짐작이고 나도 짐작이지만, 심리학의 대가 융도 나랑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니 어찌됐든 마냥 반갑고 좋다.


융의 책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읽어 보면 '제2의 인격'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자기 안에 있는 본질적인 자기, 무의식 속 자기' 등의 개념으로 나는 이해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 제2의 인격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글쓰기 방식에 대해 "그러자 하나가 둘이 되고, 차라투스트라가 돌연 스치듯 지나갔다."라고 말한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이는 차라투스트라가 니체의 내면에 제2의 인격으로 나타났다는 뜻이라고 융은 설명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초반부, 차라투스트라의 30세 나이, 호수, 산 등의 상징어에 대해서도 의식, 무의식적 측면에서 풀어 융은 분석하고 있다. 예수의 나이 30세를 의식하고 차라투스트라의 나이도 30세로 한 거라는 얘기도 한다.


융은 스위스 사람이다. 니체의 근무지는 스위지 바젤 대학이었다. 바젤에서 산 적이 있는 융은 니체를 알았던 사람들을 알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들은 니체의 남다른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자기에게 질문을 한 제자에게 감격하여 그 제자가 감당하기 힘든 말과 행동으로 대응한 니체. "니체, 사회성이 부족했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자기 기분에 한껏 몰입하여 주변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니체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융은 니체가 피아노만 보면 손가락에서 피가 날 정도로 미친듯이 피아노를 연주했다며 무서울 정도로 충동적이라는 말을 한다. 사람의 특징을 보고 심리적 성향을 분석하는 전문가 융이 이렇게 말을 하니, 진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봐도 니체는 다분히 '충동적'인 성향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늙은 현자' 원형을 사용한 거라는 얘기도 한다. 차라투스트라가 바로 그 원형이고 니체는 원형적 상황에 압도된 상태에서 이 글을 쓴 것이라고 융은 말한다.


융은 니체의 과대망상증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1889년, 니체가 뇌의 문제로 과대망상증을 앓는데,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시기에 병의 영향을 받고 있었는지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우나, 자신은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고 밝힌다. 책의 텍스트엔 과대망상증으로 돌릴 만한 것이 별로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 책에 보이는 과대망상증은 '원형' 때문이라고 말한다.


융이 이렇게 봤구나. 속이 다 시원하다. 니체 글 속에 자기 확장이 정말 많아서 이게 미쳐서 쓴 것인지 제정신에서 쓴 것이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난 니체가 과대망상 상태에서 쓴 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융도 이렇게 말해 주니 기분이 좋다.


하지만, 융은 니체의 문체에 대해 안 좋게도 보는 것 같다. 일부 문장은 아름답지만, 다른 문장들은 매우 조악하다고 말하고 있다. 니체가 인내심을 발휘하여 글을 조금 덜 요란하게만 썼다면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하는데, 난 그 표현이 참 웃겼다. 그치, 니체는 엄청 요란스럽게 글을 썼지.


융은 니체의 글에 과장과 허풍이 있다고 본다. 그 이유로 니체의 열등감, 무능감을 꼽고 있다. 이런 지적도 매우 신선했으며 그 설명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내용이었다. 나는 니체의 글에 과장이 있다는 것은 느꼈었으나 허풍이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었고, 그 심리적 기저에 열등감이나 무능감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융에게 이런 새로운 내용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


니체가 목소리를 높여 이런 과장된 언어를 쓴 이유는 아무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점. 그 점 때문에 목소리를 더 높였던 거라고 융은 설명한다.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표현은 전반적으로 격하며 거기서 니체의 '자기'가 확인된다고 융은 말한다. 작품 속 차라투스트라가 다소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니체의 내면에 지나치게 예민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설명한다. 그게 바로 니체의 '자기'라고 얘기한다.


여기서의 '자기'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자기'의 의미가 아니다. 융의 심리학 용어인데, 그냥 쉽게 생각하면 '진정한 자아, 진정한 나'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여기까지 오늘 독서한 부분에 대한 내용과 소감을 정리한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핵심 소감은,

니체와 니체의 책《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융의 접근과 설명이 난 참 좋다는 것.

이런 식의 설명이 난 아주 재미있고 좋다는 것. 그것이다.


이만 끝.


(처음~43쪽까지 독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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