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강의 평가가 좋아서 몇 년째 초청받고 있는 방송국 기자라고 하니, 기대를 해도 될 것 같다. 달력에 한 달 전부터 메모까지 해 두고, 이렇게 남았다.
밤 7시부터 9시까지의 강의.
저녁을 배달시켜 먹긴 시간이 애매하다.
다 퇴근하고 없는 교무실,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늘 오후엔 결석으로 글쓰기 수행평가를 못 보았던 학생의 수행평가 감독을 했다. 그 남학생의 정갈한 필통이 인상적이었다. 연필 3개가 다 뽀족히 깎아져서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필통이 정말 깔끔하구나. 그랬더니, 그 학생 왈,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해서요. 그런다. 그래, 그렇구나.
그 학생이 가고 잠시 앉아 있는데, 교무실에 어떤 여학생이 꽃을 들고 들어왔다.
어? 저 학생? 어제의 그 정신력 갑 여학생인데?
왜 왔나 봤더니,
내가 그 반 부담임이라서 학생회에서 카네이션을 드리는 일을 해야 해서 왔나 보다.
이렇게 꽃을 준다.
그 여학생과 어제의 일에 대해 잠시 대화를 한다.
자기는 보통 발표를 할 때, 어제 같은 상황이 되어도 발표를 포기하지 않고 한단다. 중도에 포기를 하면 그 뒤에 기분이 더 안 좋기 때문에 그냥 한다는 설명을 한다. 역시 대단하다. 이 학생은.
생긴 게 정말, 아이돌 연예인처럼 예쁘게 생겼다. 멋지구나.
너라는 사람.
그 반의 부반장인 것 같다.
또, 오늘은 학교 신체검사가 있었던 날이다. 1학년 전체 반은 시력, 청력, X-ray, 소변 검사, 피검사, 의사 상담 등 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검사를 1교시부터 4교시까지 교과 수업 시간 중에 했다.
3교시 수업이었던 어떤 반은 수업을 아예 못 했다. 학생들이 계속 들락날락하는 상황이라, 그냥 이런 날도 있는 거라고 교생 선생님께 알려 드렸다. 복도에서 학생들 지도를 하며 교생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선생님, 이렇게 수업이 날아가는 날, 학생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랍니다. 교사도 수업이 없어져서 좋기도 해요. 시험 진도 완전 촉박할 때 이러면 완전 고생이라 싫어하지만, 뭐, 지금은 학교 행사 많은 5월이니... 그냥 이대로 좋아요."
"네, 수업이 날아가니 저도 참 좋아요."
학교생활, 교사 경험을 제대로 잘 하고 계신 교생 선생님.
오늘 교생 선생님께서 앞으로 본인이 진행하게 될 수업 부분, 진도 틀에 대해 자문을 받고 싶으셔서 나에게 오셨었다. 오늘 내 수업 공강 시간엔 공문 일을 하고 있었기에, 교생 선생님께 수업 없는 시간에 교사는 이런 이런 일을 한다는 설명을해 드렸다.
그 뒤 쉬는 시간에 또 오셨을 때는, 내가 1차 지필평가 결과 분석 협의록을 작성하고 있었기에 그것에 대해서도 설명해 드렸다. 시험 뒤엔 이런 분석을 해서 협의록을 제출합니다. 하고.
그 뒤에 또 오셨을 때는 기말 지필평가 문제를 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이것도 설명해 드렸다. 지금부터 이렇게 시험문제를 내도 시간이 부족해요. 하고.
적다 보니 나름 오늘 많은 일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2학년은 소변검사를 한 날.
그리고 전교생 민방위 대피 훈련을 한 날. 낮 2시부터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훈련을 했고, 난 복도에서 안전 지도를 했다.
학교의 하루는 이렇게 다양한 일들을 하며 지나가고 있고 아직도 안 끝났다.
고3은 지금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야자를 선택한 학생들만 남아서 말이다.
아, 스승의 날 학생들 행사로 편지 쓰기를 했는데, 몇몇 학생이 내가 있는 교무실에 요렇게 편지를 두고 갔다. 배달 동아리 학생들이 목요일 날 와서 이 편지를 해당 선생님께 배달할 거다.
또, 떠오른 생각 하나.
아까 수업 들어간 반 중, 어떤 학생이 카뮈의 <이방인> 발표를 했는데, 참 발표를 잘했다.
여러 학생들이 발표를 듣고는 책을 읽고 싶어 졌다는 얘기를 했다.
녀석, 참 멋지네.
얘는 노래도 굉장히 잘하는 학생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BTS의 RM이 <이방인> 책을 읽고 인생의 좌표로 삼았다는 얘기가 담긴 어떤 책을 읽고는 자신도 <이방인>을 읽게 됐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