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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Jun 25. 2024

없음의 대명사

글감을 준 일상의 이야기

독서 모임을 한 날


여러 권의 책 사진을 예쁘게 찍었다.

책 얘기 한참, 맛있는 저녁, 밤 산책.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더 놀라면 더 놀 수 있다.

15년 된 독서 모임이다.


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밤 산책.

이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난 30대였는데...

이젠 50대다.


한 친구가 소개한 책은 시집이다.

시 전체가 온통 대명사로 시작해서 대명사로 끝나는 책.


내가 호기심을 보이니 친구가 가져 가란다.

그래, 그래. 한 번 읽어 볼까?


시 한 편

딱 잡히는 것으로 필사를 해 본다.  

                    

                     24.6.25.화.




우리


                   오은


절대 얼지 마

등굣길의 엄마는

늘 등판길 위에 서 있었다


눈길은 따뜻했지만

애가 타고 있어

그 누구의 심장도 녹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불타는 열정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얼굴만 보고도 알 수 있다

교단의 선생님은

얼굴에 화산재가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 선 지

자그마치 20년이란 말이다!


휴화산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만 볼 수 있는 노트에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낙서를 했다


한 시간에 50분 정도는

물에 물을 탈 줄 알았다

시간을 쪼개 틈을 탈 줄 알았다


20년 뒤에 네가 어디 있을 것 같니?

휴화산은 쉴 줄을 몰랐다


절대 울지마

하굣길의 엄마는

늘 황무지 위에 서 있었다


엄마와 나 사이로

승용차 한 대가 잽싸게 지나갔다


우리는 망연히 사라지는 차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난데없이 애가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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