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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Jul 30. 2024

정약용의 사상

철학 공부 끄적임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며 실학 사상가인 정약용(1762~1836).


정약용은 다른 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백생이 나라의 기본이라 보는 민본 사상을 갖고 있었다. 군주는 백성을 섬기고, 성군의 모습을 통해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백성은 군주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는 존재로서 그에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정약용은 환자, 극빈자, 노인, 어린이 등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애민'이라 보았는데, 보살펴야 할 대상을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백성으로 구체화한 점이 인상적이다.


그에게 백성이란, 보살핌만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백성은 체제 유지에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경제적 형편에 맞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고 았는데, 가난한 백성인 소민은 군주의 교화를 따르는 것으로써, 부유한 백성인 대민은 나라에 생산 수단을 제공하고 납세의 부담을 수행함으로써 나라에 기여해야 한다고 정약용은 주장했다. 정약용이 살았던 조선 후기엔 농업 기술과 상공업의 발달로, 경제적 부를 축적한 백성었는데 이들이 나라의 통치 체제 유지에 기여해야 한다고 정약용은 본 것이다.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과 백성을 대하는 관료의 바른 태도에 대한 정약용의 글을 잠시 보자.


"만일 목화 농사가 흉작이 되어 면포의 가격이 뛰어오르는데 수백 리 밖의 고장은 풍년이 들어 면포의 값이 매우 쌀 경우 수령은 일단 백성에게 군포를 납부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아전 중 청렴한 자를 골라 풍년이 든 곳에 가서 면포를 구입해 오도록 하여 군포를 바친다. 그리고 면포를 구압히는 데 쓴 돈은 백성들이 균등하게 부담케 하면 백성에게 큰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 정약용, <목민심서> 중에서 -


농사의 흉작이 있을 때,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목민관이 취해야 할 백성 보살핌의 바른 방법이 제시된 글이다.   백성을 실질적으로 돕는 방법이 무엇일지 실학 사상가답게 구체적으로 접근했던 이가 정약용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사상가로서의 입장을 살펴보자.


공자의 유학 사상을 따른 맹자, 그 맹자의 성선설은 유학의 핵심 인성론이 되어 후대의 유학자 주희, 왕수인, 이황, 이이 등에게 계승된다.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인성론을 말한다. 그런데, 정약용은 성선설에 동의하지 않았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중국 주희의 사상을 얼마나 귀하여 여기고 잘 따랐는지 생각해 본다면 정약용은 참 용감한 학자이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이황과 이이까지도 주희 말을 온전히 따르고 높이 여기며 각자 자기 주장을 색다르게 살짝 주장했을 뿐이다. 그런데 정약용은 주희의 사상에 "그것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이다.


정약용은 마치 저울의 추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은 선, 악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좋고 싫음의 '경향성'이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마음의 경향성, 즉 기호를 갖고 있다고 본 것이다. '기호'는 즐기고 좋아한다는 뜻으로,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각각의 기호를 본성으로 갖는다는 것이다. 정약용의 이런 심성론을 '성기호설'이라 부른다. 정약용은 인간의 본성인 기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보았는데, 하나는 영지의 기호, 다른 하나는 형구의 기호이다.


영지의 기호는 도덕적 욕구를 말한다. 이것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마음의 기호로서 이는 영성과 지성을 지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기호이다.

형구의 기호는 생리적 욕구를 말한다. 이것은 단 것을 좋아하고 쓴 것을 싫어하는 것, 향기를 좋아하고 악취를 싫어하는 것과 같은 육체적 기호로서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기호이다.


정약용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어 선, 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즉 자주지권을 부여받은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을 강조한 이 '자주지권'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서, 이 말대로라면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선을 행하면 그 행위를 한 자신의 공로인 것이고, 인간이 악을 행하면 그것 또한 그의 잘못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자유 의지'와 비슷하다. 단 정약용은 이 '자주지권'을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 의지를 하늘로부터 부여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차이면 차이이겠다.

 

동물은 정해진 본대로 살아간다. 동물에겐 형구의 기호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형구의 기호만 가진 게 아니라 영지의 기호도 가지고 있고, 선과 악을 선택해서 실천할 수 있는 '자주지권'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 악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정약용의 생각이다.


주희는 인간의 본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누고, 인간의 기질이 맑으면 선한 행위를 하고 기질이 탁하면 악한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기질의 맑고 탁함은 선천적인 것이다.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의 원인을 기질로 본다면, 악한 행위를 한 인간에게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정약용은 주희의 관점으로는 악한 행위를 한 사람에게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았다. 정약용은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기에 기호와 자주지권을 내세워 주희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정약용은 자주지권으로 선을 행하는 선택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구체적인 실천 원리로 '서'를 강조했다. 서는 용서와 추서로 나눌 수 있는데 정약용은 특히 추서를 강조했다. 용서는 타인의 악을 너그럽게 보아줌을 의미한다. 추서는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우함을 의미한다. 친구의 잘못을 덮어 주는 것은 용서인데, 용서는 타인의 악행을 용인해 주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추서는 아우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오히려 내가 먼저 형님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추서는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보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므로 바람직하다. 고로 정약용은 추서에 의한 선한 행위의 실천을 더 권하고 강조한다.


정약용은 인간의 욕구는 생존과 도덕적 실천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의 영체 안에는 본래 욕구의 일단이 있다. 만약 욕구가 없다면 천하의 수많은 일을 해 나갈 수 없다. 오로지 이익에 밝은 자의 욕구는 이익을 좇아서 꿰뚫어 나가며, 의리에 밝은 자의 욕구는 도의에 따라 꿰뚫어 나간다."

이렇듯 정약용은 인간의 욕구가 지닌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였다. 단지, 감각적 욕구에서 비롯된 기호를 제어하지 못하면 악한 행위가 나타날 수 있으니 이를 도덕적 욕구인 '영지의 기호'로 제어하고, 자주지권을 통해 후천적으로 선한 행위를 확충해 가라고 그는 한다.


정약용은 성리학의 입장과 달리, 인의예지의 사덕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단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그는 보았다. 하지만 사단을 본성으로 보지는 않았다. 정약용이 본질로 본 것은 '기호'이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사단인데, 사단이 인간에게 내재해 있으며 이를 노력으로 수양하면 성인 군자와 같은 이상적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본 점은 성리학자와 정약용의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성리학에서는 사단뿐 아니라 사덕도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내재해 있다고 보았는데, 정약용은 사덕은 내재해 있지 않고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본 점이 다르다. 사덕은 인의예지를 말한다. 성리학에서는 이를 하늘이 내려 준 천리로서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는데, 정약용은 이에 대한 입장이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인간의 후천적 노력으로, 즉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영지의 기호로 선을 끝까지 확충해 나간 사람이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덕인 것이다. 끝까지 노력하지 않은 사람, 중도에 포기한 사람은 사덕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사단이란 인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며, 사덕은 사단을 확충한 것이다. 확충하는 데에 이르지 못하면 인의예지라는 이름은 끝내 성립될 수가 없다."

- 정약용, <여유당전서> 중에서 -


"시연이란 불의 시작이고 시달은 물의 시작이며 측은은 인의 시작이다. 측은이 확충되어 자상함의 극치에 이르면 인이 천하를 뒤덮게 된다. 단은 시작을 뜻한다."

- 정약용, <심경밀험> 중에서 -


정약용은 사단은 사덕을 형성해 가는 시작점이라는 입장을 지녔고 이를 단시설이라 부른다. 성리학에선 사단은 인간 내부에 사덕이 있다는 단서, 실마리, 증거가 된다고 보았고 이를 단서설이라 부른다.


"사덕은 사단을 확충한 것이다. 확충하는 데에 이르지 못하면 인의예지라는 이름은 끝내 성립할 수 없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 측은해 하면서도 가서 구하지 않으면 그의 마음에 인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실학 사상가답다. 구체적인 실천과 적용이 중요하다고 본 정약용.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서 실학사상을 펼친 정약용은 조선 시대의 절대 권위를 지녔던 성리학의 시조 주희와 자신의 다른 사상을 용감하게 잘 펼쳤다. 정약용의 사상을 공부하며, 그가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을 강조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약용 관련>

성기호설, 기호, 영지의 기호, 형구의 기호, 자주지권, 사단, 단시설, , 서, 용서, 민본주의, 소민, 대민, 백성의 역할, 목민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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