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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기록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라는 책

독서 기록

by 퀘렌시아

오늘 새벽, 브런치에 올린 그분의 글을 읽고 눈물을 좀 흘리다 잤다.

오늘 아침,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이 책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분께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다.

그분의 글에 댓글을 달 수 없다. 차마 무슨 말도 한 글자, 얹을 수가 없다.

나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그럴 것이다.


문득, 그분이 아무 댓글이 없는 자신의 글에 혹시나 서운함을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냉담한가? 내 글이 별로인가? 내 글에 무관심한가? 이렇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독자의 진심은

'어떤 말도 얹을 수가 없어서요. 눈물로 읽고 있습니다. 힘내라는 말 이런 말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지요. 말이 상처를 주는 거지요. 아무 말도 못 하는 게, 그게 진심이에요.'

이거다.


그분께 이 글이,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음 좋겠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 의사이자 교수였다. 지금은 명예퇴직을 하신 분이다. 아내가 건네 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사후생》 이라는 책을 읽고 '죽음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세계적인 죽음학의 대가이다. 호스피스 개념이 생기게 한 분이다. 《사후생》을 읽기 전, 정현채 박사는 불편증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책을 읽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책이 분명 이 박사님께 큰 영향을 준 것이다.


그래서였겠지. 그 뒤, 정현재 박사는 5년 동안 죽음학 공부를 한다. 그 뒤, 일반인을 대상으로 죽음 교육을 하고 계시다. 이 책이 2018년 발간되었는데 그때까지 480회의 죽음학 강의를 하고 다니셨다. 지금은 본인도 암으로 몸이 안 좋으셔서 제주도에 계시다고 한다.


이 책은 안락사에 대한 얘기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예전의 나는 안락사에 대해 피상적인 수준의 느낌으로 한쪽 편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나는, 이 책을 읽고 진짜로 진심을 담아 한쪽 편을 지지하게 됐다. 이 책에는 세계 각국의 안락사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미국, 스위스, 네덜란드 등 각국의 안락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제도에 대해 짧으면서도 쉽게, 핵심을 담아 잘 설명해 준다. 네덜란드는 국민의 85퍼센트가 안락사를 지지한다고 한다. 정말 굉장히 높은 수치이다. 이런 정보들이 내가 여러 생각과 판단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자살과 존엄사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이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정성을 다해 말하고 있다.


어제 읽은 글에서 그분은 너무 고통스러워하셨다. 너무 아파 보였다. 나는 암이 그렇게 아픈 줄 몰랐다. 우리 아부지가 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우리 아부지도 마지막 순간에 그 정도로 아프셨을까? 의식이 없으시고 며칠 맥을 유지하시다 가셨어서 옆에서 보는 우리 눈에는 아빠의 고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아부지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기도를 했다. 종교도 없는 나이지만 그 상황이 되니, 그냥 속으로 혼자 기도를 했다.

"제발, 우리 아빠가 고통 없이 있다 가시게 해 주세요. 오래 사는 것보다, 고통 없는 게 더 중요해요. 아빠가 고통 없이 제발, 편히 계시다 가게 해 주세요."

이거였다. 아빠는 다행히 8년 투병 생활 동안, 신기하게도 고통을 느끼지 않으셨다. 마지막 순간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시다 편히 가셨다. 생명 연장 의료 행위, 이런 거 안 하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이다. 가실 때 편히 가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완화병동이다.


그런 나의 아빠를 봐 왔었는데... 어제 그분의 글을 통해, 암의 절대적 고통, 극심한 고통을 알게 됐다. 그분께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들에게는 죽음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글이 그분의 말씀에 대한 내 생각이다.


청소년들의 자살에 대한 언급, 왜 자살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 중학생들에게 '죽음교육'을 했는데 어느 날 학생이 와서 정현채 박사에게 자기 얘기를 들려준 얘기. 박사님의 그 강의가 아이에게 큰 힘이 되어준 얘기. 이런 게 나온다. 그 부분을 읽고 학교에서 진짜배기 자살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매뉴얼적인 자살 교육 말고 말이다. '내가 그런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사실은 그런 교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아이들이 너무도 많이 자살 시도를 한다.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이 되는'죽음 교육'이 필요하긴 한데, 오해의 소지가 많고 불협화음이 많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라 조심스럽다는 생각 정도까지를 한 상태이다.


이 책에는 죽음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 죽음 뒤에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잘 나와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불편해하실 분도 분명 계실 것이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불편 없이 이 책의 내용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글은, 그분을 생각하며 쓴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이 책에도 얘기 나와요. 이 책이, 또 책 부록에 담긴 많은 책들이 혹시라도 도움일 될까 싶어 글 올립니다. 마음으로 글 읽고 있어요."


그분이 이 글을 읽으실까 싶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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