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기록

《해찰 부린 감정 나들이》를 받고

독서 기록

by 퀘렌시아

시집을 한 권 샀다.


어느 날, 브런치에서 이 시인의 글을 보고

'우와! 멋져'

라고 느꼈었다. 그런데, 그 시인이 첫 시집을 냈다는 글을 보게 된 것이다.

고로 바로 샀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추석 연휴 전에 사서 더 오래 기다리게 됐다.

거의 2주 만에 받았다. 작가님께 이 책 배송이 늦다는 것도 알려드리며 기다렸는데, 오늘 드디어

왔다.


시집을 돈을 주고 산 건 참 오랜만이다. (아, 내가 사랑하는 '볼 시린 무'동시집 산 것 빼고)

이 책은, 크기는 보통의 얄팍한 시집 모양이 아니다. 일반 서적 크기의 사이즈이다. 마음에 든다.

이 시인의 시가 내 마음을 잡은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침표 없음' 바로 그것이다. 문장 끝에 찍는 그 '점'말이다.


누구는 그러겠다. 시라는 것이 보통 다 마침표가 없지 않냐고.

그래, 맞다. 보통 시들은 마침표가 없다. 그런데 내가 느낀 그 시들은 마침표가 없는 시라서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유는, 그 시들은 시 모양으로 짧으니까. 짧은 시니까 마침표 없는 게 당연한 걸로 보인다.

내가 보기엔 말이다.


그런데 이 시인의 시는 길다. 독백 형태의 글들. 시인데 산문의 느낌이 드는 이 시. 그런데 시이다. 여운이 느껴진다. 시의 심상이 느껴진다. 정서와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고 나를 조용히 나만의 시간으로 들어가게 해 준다. 그래서 산문 같은 이 시인의 시는 나에게 멋지게 시 행세를 한다. 그 '마침표 없음'으로써.


그래서 난 이 시인의 시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순전 나만의 느낌이다. 시든 소설이든 모든 작품은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난 나의 느낌을 적는다.


마침표 없음이 주는 자유로움, 긴 산문의 독백 속에서 느껴지는 시 속 목소리.

편안하게 다가오지만 시 속의 목소리는 세상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을 얘기하고 있다.

인간사에 대해 얘기한다.

두 편의 시가 오늘 마음에 들었다. 잠시 필사를 해 본다. 그 전에, 잠시 얘기할 게.

이 시인의 시가 마침표가 없어 매력적이라고 해 놓고, 마음에 든 두 편의 시를 소개하려고 보니, 웃기게도

이 두 편은 마침표가 있다. 그래도 좋다. 이 시집의 패턴은 주로 마침표가 없음이나 이렇게 있는 시도 있다.

이것도 개성이고 멋이지. 모두 다 똑같지는 않다. 어찌 됐든, 오늘 내 맘에 든 시 두 편을 적어 본다.






꽃잎이 울다


얼마 전부터 요동치던 감정을 정리할 겸 주홍색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

갔다. 주홍 우산 닮은 꽃집을 지나 골목길을 돌아서는데 초록 담벼락 아

래서 젖은 꽃잎이 훌쩍거린다. 왜 그러는데? 몰라. 누군가 인정사정없이

밟고 지나간 흔적이 잔상에 남아 들락거릴 뿐이야. 그런데 우울해. 치킨

이라도 먹어야겠어. 실은 나도 내 자릴 지키고 싶었거든. 이렇게 허무하

게 떨어지게 될 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어. 언제쯤 세상은 참 공평

하다 말할 수 있을까. 부단히 애쓰고 애쓴 시간들이 더는 우울하지 않기

를 바라는 건 헛된 욕심이고 욕망일까. 겹겹이 싸인 꽃잎 중심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아채는 날이 오긴 할까.

기다림은 멀쩡하던 심장이 어쩌면 가지 않아도 될 지옥을 경험할 만큼

잔인하다. 그런데도 미워할 순 없다. 양다리 걸친 친구를 증오하듯 버릴

수도 내칠 수도 없다. 그러니 언제라도 내편이 되어주길 기대하는 이기

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마음먹은 게

차라리 덜 비참할 거 같아. 주홍 지붕 위로 뚜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은 꽃

잎 따라 떨어진 자존감을 점점 더 세게 바닥으로 밀착시킨다. 숨이 턱 막

혀온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축축하게 젖어든 거리를 덮은 꽃잎 하나 유

독 아픔을 호소하며 울어댄다. 무표정 무감정을 소유한 명품 치킨의 영

향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비가 그치려나보다. 젖은 자존감이 말라간다.

-《해찰 부린 감정 나들이》중에서


꽃잎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아프구나. 꽃잎아.'

왜 그러는데? 하고 물었는데, '몰라'라고 대답하는 부분에서 울컥. 마음이 아프다.

비가 그치는구나. 삶은 이어지는 거니까. 젖은 자존감이 말라가서 다행이다.

<이 시에 대한 짧은 내 감상>



보편성의 위력


어디에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그날이었어. 우연히 발견한 무리들 속

에서 비슷한 환경을 만난 거야. 뭔지 모를 끌림에 압도당한 느낌이었지

만 견딜만했어. 그 힘듦 나만의 것이 아니었나 봐. 사는 게 다 거기서 거

기라는 걸 알아채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울고 있는 문제들을 거리

낌 없이 꺼내고 있더라고. 거짓 자기와 억압으로 둘러싸인 시간들이 해

방되고 싶었나 봐. 진짜 연약함을 드러냈는데도 괜찮더라고. 그뿐만이

아니었어. 조금 수치스러운 일들까지도 꺼내왔는데 비참해지지 않더라

고. 몰랐어, 내가 알고 있던 보편성보다 더 깊숙한 곳에 놀라운 위력이 있

다는 걸. 그건 단순한 립서비스의 위로가 아니었어. 보이고 싶지 않은 결

핍을 드러냈을 때 비난받지 않는다는 걸, 누군가로부터 심한 공격을 당

했을 때도 망하지 않는다는 걸, 엄청난 비난 속에서도 결코 해체되지 않

는다는 걸 울고 있던 자아가 목격하는 거, 그런 다음 용기를 내 마침내 자

기 연약함을 보러 가는 것. 내가 찾고 있던 바로 그거였어. 보편성의 위

력에 매료되어 가는 동안 내 삶의 중심 어떤 상황에서도 붕괴되거나 더

는 와해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는 셈이었어. 아마도 빗소리만큼 요란하

던 감정의 역동을 다 받아낼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해찰 부린 감정 나들이》중에서


이런 경험, 있나? 완전한 노출? 거리낌 없이, 비난 없이, 안전한 느낌? 한 번

있다. 보편성의 위력을 믿고 자신의 수치심까지 드러냈을 때 안전할 수 있을까?

사람을 통해 그런 위안을 과연 얻을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엄청난 비난 속에서도 결코 해체되지 않는다는 걸 울고 있던 자아가 목격하는 거,

그런 다음 용기를 내 마침내 자기 연약함을 보러 가는 것'

이런 경험을 시 속의 목소리는 경험했구나. 부럽고 멋지다.

자신의 연약함을 직면하는 용기. 그 '강함'이 멋지다.

자신을 까발렸지만, 직면하는 용기를 얘기하는 이 시의 경험이 난 좋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마무리도 좋다. 인생이 어떻게 항상 자신만만하겠어.

'감정의 역동을 다 받아낼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라는 여운 말이다.

<이 시에 대한 짧은 내 감상>





인터넷 글로 시를 읽는 것과

시집으로, 종이로, 만지는 시는 다르다.

나는 종이를 사랑한다.

종이가 주는 느낌과 향기를 사랑한다.


시집의 표지 색이 주황이다. 화사하고 좋다.


해찰 부린 감정 나들이를 야금야금 맛볼 것이다.

하루에 다 먹으면 맛이 섞여서 싫다. 야금야금, 싹싹.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