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친절한 선생님 같아"

내 아이를 대하는 나의 모습_6

by 퀘렌시아

드디어 휴직을 했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오기 전, 집도 이사를 했다.

남편과 둘이 살 때는 좁아도 상관없지만, 아이들 둘을 데리고 사는 데에는 집이 좀 더 큰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못 했던 거, 원 없이 할 마음으로 아이들과 살 집도 구했다. 학교가 집과 가깝고, 동물 모양, 보물선 모양의 미끄럼틀이 있는, 그런 좋은 놀이터가 있는 집으로 말이다.


8살, 6살 딸과 아들을 데리고 사는 생활. 하루하루가 소꿉장난 같았고, 아침, 점심, 저녁을 해 먹이며 설거지를 해대는 진짜 살림을 해 가며, 난 진짜 전업주부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에 초등학생 1학년인 딸아이와 함께 학교까지 가는 길. 아들이 잠자고 있는 시간, 깨기 전 후딱 딸의 손을 잡고 다녀오는 그 길. 이건 내가 꿈꾸는 이상적 삶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못 해 본 것을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어서 마냥 만족스러웠다.


딸아이를 교문에서 배웅하며 아이가 걸어가는 뒷모습, 실내화 꺼내 신는 뒷모습, 신발을 제대로 못 넣는 그 뒷모습을 보며 때론 들어가서 넣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던 나. '아서라~~'하며 스스로를 제어하고 아이가 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본 나는 엄마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벅찼다.


집에 돌아와선 6살짜리 아들내미 궁둥이를 두드리며, 스포츠단 가자고 깨웠다. 앞, 뒤 짱구 우리 아들. 무지 귀엽게 생겨서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이. 시어머님이 남편 어렸을 때 그렇게 예뻐서 동네에 데리고 나가면 다들 예쁘다고 한 마디씩 했다는 일화를 자주 들려주셨는데, 이 말씀을 들을 때면 난 '진짜요? 어머님? 에이, 어머님이 크게 느끼시는 거지요... '라고 생각하며 웃곤 했는데....


내 자식 데려다 놓고, 내가 매일 데리고 나가보니, 세상에. 어머님 말씀. 나도 내 아들 보며 똑같이 하게 됐다.

"아구, 귀여워.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와서 말 거네."


이렇게 알콩달콩 그해의 3월과 4월을 보내던 나.


일산에 사는 작은언니가 어느 날, 날 보고 얘기한다.

"너, 선생님 같아. 친절한 선생님. 아이들 대할 때."


어? 그게 무슨 말이지? 친절하다는 얘기인가? 차근차근 가르쳐서 선생님 같다고 하는 건가? 그때는 그 말이 칭찬인 줄 알았다. 언니가 마저 다 하지 못한 뒷말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니까, 엄마 같지가 않아. 보통 엄마가 애들과 지낼 때의 모습이 아니야. 그런 의미의 선생님 같은 엄마야."


그 시절의 난 신혼부부들이 참깨 쏟아지는 행복감을 느끼는 시절의 모습과 같지 않았을까? 말, 행동, 표정...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럽고, 자기 감정이 '평화, 평화, 평화'라서 뭐든지 좋게, 좋게만 말이 나가는 시기 말이다.


몇 개월 후부터, 언니의 말이 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몇 개월 후부터 난 신혼기 끝난 부부처럼, 정말 엄마 같은 엄마의 모습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마냥 친절하고, 마냥 상냥하기만 한 나는

좋은 엄마이고 싶은, 노력하는 엄마였을 것이다. 휴직 전, 애들과 떨어져 살던 7년 동안.


덜 친절하고, 소리도 지르고, 큰 소리로 애들을 부르기도 하는 나는

그냥 엄마의 삶을 사는, 일상의 엄마였을 것이다. 휴직 후 애들과 함께 살면서.


7년간 친절한 엄마였던 난, 이제 '진짜 엄마의 모습'이 되어갔다.

이것도 휴직이 준 또 하나의 행복이라 생각한다.


이상적인 엄마보다, 생활 속의 엄마이고 싶다.

그게 더 소중하다.





<이 이야기는 과거 10여 년 전의 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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