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달려온 직장 생활, 처음 갖게 된 1년의 휴직은 나에게 어떤 기쁨을 주었을까. 다섯 가지만 생각해 본다.
휴직을 한 후, 기쁜 것 하나. 내 아이 얼굴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것. 떨어져 살았기에 그전까지는 아이가 자라는 매일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봤다고는 해도 너무 조금밖에 못 봐서 아쉬웠는데.... 그런데, 이제 데려와서 같이 살기 때문에 언제든지 볼 수 있다. 계속 볼 수 있다. 그 기쁨이 가장 크다. 내 아이가 자라는 그 순간순간을 볼 수 있는 기쁨.
둘, 같이 잘 수 있다. 우앙.... 말랑말랑 아이들 틈바구니에 끼어 이쪽 봐라 저쪽 봐라 서로 싸우고 시기하며 엄마인 나의 시선을 차지하려는 아들, 딸의 성화를 받는 나. 그 아이들의 팽팽한 신경전과 싸움 소리가 날 행복하게 한다. 아... 엄마가 되는 행복감. 내 애들과 이렇게 한 이부자리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너무 행복하구나. 사랑받으며, 사랑 주며 내 아이와 같이 잠자는 기쁨.
셋, 같이 실컷 놀 수 있다는 것. 시간제한 없이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렇게 기뻤다. 매일 아이들 얼굴을 보러 직장에서 시댁까지 가면, 늦은 시각이라 짧게는 10분. 길면 1시간. 아이들과 놀다 집으로 와야 했다. 신데렐라도 아니고 난 엄마렐라. 그 시간이 참으로 야속하고 싫었다. 아이들 잠잘 시간, 어머님 피곤하지 않게 내 손에서 애들을 놔주어야 할 시간. 새벽 직장 출근을 위해 피곤한 내 몸을 집에 빨리 보내야 한다고 재촉하는 시간. 정말 시간이 아쉬웠다. 그런데, 이제 시간을 다 갖게 됐다. 내 맘대로 애들과 실컷 놀 수 있다. 아, 이 행복. 시간 전체를 가진 엄마가 된 기쁨.
넷, 아이들과 문방구에 갈 수 있다는 것. 100원짜리 탱탱볼, 500원짜리 고무딱지. 그 밖의 자잘한 문구, 장난감들. 시댁에 애들을 보러 가는 시간은 밤이라 애가 낮에 유치원 친구들 것을 보고 자기도 갖고 싶었던 수첩, 공기, 지우개... 신기한 그 무엇에 대해 얘기를 해도, 듣기만 할 뿐. 같이 가서 봐 주고 사 줄 수가 없었다. 밤이라는 시간 때문에 아이의 호기심이 가는 물건들에 대해 반응해 줄 수 없었는데, 이제는 수시로 빵빵 데려갈 수 있다. 집 앞 문방구.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아이들과 매일 문방구 가는 엄마 역할을 할 수 있다. 하하, 문방구 같이 갈 수 있는 엄마가 된 기쁨.
다섯, 같이 있다는 안정감. 내 삶이 안정감이 없다는 것을 아이들과 떨어져 살 때는 몰랐다. 아이들을 낳기 전, 남편과 나 둘만 살 때는 그 둘이 전체였기에 괜찮았는데, 아이들 부모가 된 뒤에 애들 없이 둘만 사니까 안 괜찮았다. 당시엔 안 괜찮은 줄 몰랐는데, 떨어져 살던 애들과 같이 살고 보니 '안정감'이 느껴지면서 알게 됐다.
'아, 그 전엔 불안정했구나.'
정서적 안정감을 얻은 엄마의 기쁨.
휴직이 준 기쁨과 행복이 이 다섯 개뿐이겠냐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꼽아 보니 이렇다. 이 소소한 기쁨이 나의 선택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어 준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물론 휴직이 아니다. 내 아이를 낳은 것. 그걸 난 인생 최고의 선택으로 생각한다.
아, 또 이러면 내 아이들을 낳을 수 있게 한 원천을 최고의 선택으로 꼽아야 하는 건가?
그래,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내 남편과 결혼한 거다.
하하, 남편. 고마워. 나랑 결혼해 줘서.
<이 이야기는 과거 10여 년 전의 일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