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교시 수업이 끝나 4반 교실에서 노트북과 교과서 등 내 짐을 싸서 나오는데, 교실 문 앞에서 한 여학생이 묻는다.
"선생님, 1학년 4반 교실에 있는 우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비 오니?"
"네."
"2학년 우정홀에 비 올 때 빌려주는 우산 있지 않니?"
"전 3학년이에요. 비가 많이 와서 애들이 다 빌려 갔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선생님이 4반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4반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빌려야 할 것 같아."
"선생님은 몇 반 담임 선생님이세요?"
"나? 난 2반."
"그럼 선생님, 선생님 반 교실 여분 우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오! 그렇지. 빌려 줄게. 같이 가자. 여분 우산 있을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반 교실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 여학생. 우리 반 아이들은 원격수업 기간이라 학교에 없다.
내가 교실 문 주변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 반에서 검정 장우산을 꺼내 나오며 그 여학생이 말한다.
"선생님, 저 이 우산 좀 빌릴게요. 내일 꼭 가져올게요. 전 3학년 6반 김지혜예요."
"응, 그래. 선생님 교무실은 1학년 교무실이야. 거기로 가져오면 돼."
"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응, 잘 가."
그 아이를 보내고 짐을 정리하고 퇴근을 하려 중앙 현관엘 나왔다. 많은 아이들이 지붕 아래 서 있다. 고2, 고3 아이들. 빗속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렇게들 모여 서 있다.
내 눈앞에 어떤 여학생이 그냥 비를 맞으며 고개 숙이고 걸어 나갔다. 나도 그 여학생 뒤를 신문지로 머리만 덮은 채 따라 나갔다. 우산 빌리기도 뭐하고 귀찮아서 그냥 비를 맞고 가고 있는데,
그 아이는 우산을 쓰고 사뿐히, 총총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겠지?
운전하고 집으로 오는데, 그 학생이 떠올랐다.
'아, 그 여학생. 참 현명하네.'
아까 교실 문 앞에서 웬 여학생이 날 막아서고 물었을 때,
아이가 묻는 말에 난 나오는 대답을 했다. 수동적으로.
대화를 리드하는 건 내가 모르는 그 여학생이었다. 그 아이도 날 몰랐을 텐데 아주 잘 리드하며 말을 걸었다. 딱 적절한 표정과 태도로.
그 아이가 왜 내가 몇 반 담임인지 묻는지도 몰랐다. 너무 짧은 시간, 대화에 끌려가느라 머리 굴려 생각하고 말고도 없었다.
아! 그런데 그 아이는 4반 담임을 찾아 또다시 묻고 하는 것보다 바로 앞에 있는 선생님한테 바로 묻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구나. 그 짧은 순간 말이다. 무조건 우산을 빌리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선생님이 4반 우산 빌려 주시면 안 돼요?'라고 물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 난 기분이 살짝 상했을 것 같다. 거절의 설명을 했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 아이는 자기의 논리로 몰아붙인 게 아니라, 상대의 논리를 존중하며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거다. 내 논리란 우산은 그 반 담임 선생님께 빌려야 한다는 것이겠지. 순발력 있게 그 아이는 바로 앞 대상이 우산을 빌려 줄 수 있는 대상인지 아닌지를 파악한 거다. 비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어야 자기 교실 우산을 빌려 줄 수 있을 테니까. 상대의 논리를 존중하며.
우와!
참 똘똘하네. 참 당차네.
오! 지혜롭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아이가 자신에게 필요한 걸 얻기 위해 했던 그 과정이 참 세련되고 멋있게 느껴졌다. 진짜 현명한 아이이구나.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대처? 그 여유로움과 귀여운 당참과 문제해결력. 진짜 멋지다.
운전하며 그 아이를 떠올리니 미소가 지어졌다.
"얘야, 너 참 현명하구나. 그 유연하면서도 확실한 대처,
정말 멋지다. 멋져."
내일 이 말을 꼭 해 줄 것이다.
비 오는 오늘, 기분 좋은 단상 한 편.
주룩주룩~~~~
남기다.
난 비 오는 날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