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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몬 Nov 20. 2023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자유부인이 되어 친구와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다. 2박 3일, 단 5끼(+맥주)였을 뿐인데 굴곡진 곳마다 잼 바르듯 차오른 두툼한 살과 꽉 찬 붓기를 얻어 왔다. 여행 다녀와서 몸이 무거워진 일은 부지기수(거의 매번)인데 이번에는 전에 없던 위기감이 엄습해 왔다. 


꾸역꾸역 주 2회 PT로 체중을 유지하다가 시험 핑계로 그만둔 지 한 달이 넘었고, 슬금슬금 횟수가 늘어나던 야간의 치맥이 자연스러워지더니 건강한 식단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온데간데 사라져 버렸다. 그럴수록 운동을 하면 되겠지만, 의지란 놈은 꼭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내일은 꼭 와 달라고 '의지'를 애타게 부르며 어떻게든 다른 일로 바빴던(바쁜 척에 가깝다) 나날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던 중이었다.


여행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어야지, 합법적인 일탈에 기대도 품었고 가족들의 든든한 격려도 받았다. 그렇지만 맙소사,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해가 다르게 떨어지는 소화능력을 생각하지 못하고 꼬박꼬박 메인 메뉴를 찾아 끼니를 챙긴 우리. 밥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배가 고프기는커녕 방금 식사를 마친 듯한 포만감이 기본 세팅이었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미련함으로 욕망의 아주매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틀간 호텔 조식을 먹었는데 그 아침에조차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다. 첫 접시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풀때기를 가득 담았다. 작은 문제가 있다면 첫 접시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


여행에서 돌아온 날 남편이 맛있는 저녁을 해주었다. 맥주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삼겹살두부김치.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아 갈증을 달래줄 맥주를 찾았을 때 의기양양하며 냉장고를 촥 열던 그에게서 살짝 후광을 본 것 같기도. 이 행복했던 저녁식사를 마지막으로 나에게 드디어 '의지'가 돌아왔다. 어서 오세요. 제발 저와 함께 새해를 맞이해 주세요.




아침에 일어나니 여전히 더부룩하다. 이대로 욱여넣고 싶지 않아 아침식사는 거르고, 남편과 아이들이 나간 후 운동복을 입고 유튜브를 켰다. 이번에는 제법 큰 '의지'님이 오신 것 같아서 그에 발맞춰 지속 가능한 운동을 고심했다.


힘든 건 괜찮은데 재미가 빠지면 계속하기 어렵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건 경쟁적인 요소가 들어간 격렬한 운동이란 걸 알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그간 소홀했던 관리에 삐걱거리는 몸이요, 둘째는 정해진 장소에 시간 맞춰 나가야 하는 것에 심히 부담을 느끼며 어떻게든 빠질 핑곗거리를 찾게 될 '내가 잘 아는 나'란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엔 운동 효과는 좀 덜하더라도 재미요소 가득한 홈트를 찾아서, 오로지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꾸준히만 해보자고 목표를 잡았다. 

(다들 하는 걸 텐데, 느긋하고도 충동적인 요상한 성향을 지닌 내게는 이 목표 설정부터 참으로 큰 의지가 필요하다.)


'다이어트 복싱', '급찐급빠', '에어로빅 홈트'와 같은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고르다 보면 5, 10분은 순삭(순간 삭제)인지라 일단 시작했다. 운동 효과를 1.2배 높여주는 워밍업을 따라 하고 나서 3일 만에 2kg이 빠진다는 운동 영상(아닌 줄 알면서도 매번 속는다)을 열심히 쫓아가다 보니 열기가 훅 오른다. 그러고도 목표한 시간이 30분이나 남아 워킹패드(주인이 게을러서 정리되지도 못하고 가끔 아이들의 놀이에 참여하는 중)로 좀 걸을까 하던 중 어떤 썸네일에 시선이 붙들렸다.


운동하기 싫을 때, 90년대 에어로빅 다이어트 댄스

제목부터 딱 내 상태다. 운동하기 싫고, 요즘 아이돌은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내게 맞춘 듯한 제목에 홀리듯 시작했다.


 



유연성을 포함한 운동신경과 음악적 센스가 일반인 치고는 꽤 괜찮았던 나는, 놀랍게도, 타고난 몸치였다. 그냥 잘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 동작 한 동작 분석해서 입력하지 않으면 춤 동작을 엇비슷하게라도 흉내 내지 못했다. 어떤 운동이든 기본자세를 빠르고 정확하게 익혀서 곧잘 해낼 수 있었던 나에게 '춤'이란 참 알쏭달쏭한 영역이었고 사는 내내 가까이할 일도 없었다. 그래도 춤보다 체조에 가까운 '에어로빅'은 절도 있게 따라 하며 교양과목에서 에이플러스(A+)를 받았던 대학생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 홈트로 시도해 본 것이었다.


학창 시절 아이돌과 연예인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조차도 노래방에서 하도 들어서 흥얼거릴 수 있을만큼 그 시절을 풍미했던 대표 격의 곡들이 이어졌다. 


https://youtu.be/rYpuneL8Xac?si=R-fQlzjSslAcv0ew

오늘도 난(이승철) / 허니(박진영) / 정(영턱스클럽)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임창정)


가볍게 따라 하며 운동량과 재미 모두 걷기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만 한데?' 생각하며 흥을 내고 있는데 반가운 <허니>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맙소사, 이건 내가 알던 에어로빅이 아니라 댄스 안무였다. 어버버 하며 따라 하다 보니 손동작도 스텝도 안 봐도 가관이었다(안 봐서 다행이었다). 어느 순간 어설픈 내 동작에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점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위의 곡들이 2번 반복되는데, 두 번째에는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몸을 더 쭉쭉 늘리며 크게 숨을 쉬었다. 심지어 의식하지 않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순간 놀라기도 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종아리 근육이 뭉쳐오는 게 느껴졌다. 정말로 즐거웠다. 흥겨웠다. 나는 웃고 있었다. 


후련해


어영부영 흩어져도 아까운 줄 몰랐던 1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음을, 내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찾은 것 같다. 나의 '의지'를 붙들어 매 줄 완벽한 홈트를. 다음 달부터 시작할 예정인 수영과 병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오늘의 활력을 수혈하니 여행 후유증도 가뿐히 날아갔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겠지. 건강, 다이어트, 긍정적인 습관, 자신감, 만족스러운 나.


꼭 성공하고 이 글 다시 보러 와야지.


#일기 #일상 #다이어트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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