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찮은 서른여덟이 덤벙대는 열 살 아들에게 해주는 말
여행지에서 젤리를 시식하다가 금니가 빠졌다. 올 초에 덮밥을 먹다가 깨진 치아의 옆 자리. 미루고 미루다 날을 잡고 치과에 가려는데 잘 챙겨둔 빠진 금니가 보이지 않는다.
'당황하지 말고 생각, 생각, 생각!'
금니를 놓았다고 기억하는 곳과 챙겨두었을 법한 곳을 다 뒤졌는데도 나오지 않자, 찌푸린 미간 깊은 곳의 CPU는 순간 먹통이 되고 애꿎은 발걸음은 제자리걸음만 빙빙 돌 뿐이다.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지나온 동선을 훑어보다가...
찾았다. 화장대 쓰레기통에서. 휴지에 곱게 싸여 얌전히 휴지통 안에 들어가 있는 금니 조각을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내가 버린 게 맞다.)
"아 어딨어! 분명히 여기 뒀다고! 으아아아아 엉엉엉 가야 돼!"
오늘 아침 등교하려던 아들이 핸드폰을 못 찾고 불안이 치달아올라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 와중에도 지각하지 않으려고 시간 맞춰 현관문을 나서면서, 내게 핸드폰을 찾아서 식탁 위에 올려달라고 부탁인지 협박인지 모를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들의 불안증과 패닉 증상은 유아기에는 꽤 잦았고, 초3이 된 지금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발작처럼 찾아오는지라 아주 이골이 났다. 같이 소리 지르지 않았고 어쨌든 아이는 학교에 갔으니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고, 한숨과 함께 생각을 굴리며 상황을 복기했다.
'아, 오늘 방과 후에 내가 병원 일로 집을 비울 거라고 했는데, 그게 좀 불안했구나.'
머지않아 엄마가 복직하면 너희들이 하교해서 알아서 할 일들을 해야 한다고 얘기한 후로 첫째도, 둘째도 자꾸만 하교 후 내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던 요즘이었다.
사실 아들의 건망증과 불안증은 내가 준 거다. 유전자, 정서, 습관 뭐라고 말을 붙여도 상관없다. 아무튼 내가 낳은 아이에게서 내 안의 깊은 곳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나와 지나치게 닮은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아들이 매번 물건을 찾아 헤매는 행태는 어쩌면 내가 더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 외출 때에도 나는 늘 뭔가 빠뜨린 게 있을까 봐 불안해서, 혹은 어떤 물건을 어디 뒀는지 잊어버려서 끝까지 현관문을 나서지 못하고 세 아들을 남편 손에 맡긴 후 짧아도 2분, 길면 10분이 지나서야 주차장으로 내려가곤 한다. 덤벙이가 엄마가 된 후로 챙길 것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볼멘소리로 항변해보지만, 남편 말로는 학생 시절 연애할 때도 그랬다고 하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10년쯤 전,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어 주말에 남자친구(현재의 남편)와 함께 차를 끌고 짐을 가지러 갔다. 늦은 밤이라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었고, 나는 책만 몇 권 챙겨서 금방 나올 거라 차를 아주 대충 대놓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차키를 손에 들고 달랑거리며 가다가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이 건물은 시설은 삐까번쩍하면서 화장실 안에 차키 놓을 곳 하나 없는 게 참 불편하다'라고 생각하며 손에 든 차키를 신경 쓰면서 일을 봤는데, 개운하게 변기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물을 내리는 순간 -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모션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 손에서 미끄러진 차키가 호로로로록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이라도 안 내렸으면 건지면 되는데, 막히기라도 했으면 어찌어찌 꺼내볼 텐데, 경쾌한 소리와 함께 힘찬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물이 빨려 들어간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한 변기가 야속했다.
엉망으로 통로까지 막으며 대놓은 차가 생각나 관리실에 견인이 가능할지 물어보았으나 해당 지하주차장은 견인차 진입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때부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손이 덜덜 떨려왔다. 간신히 스페어 키가 집에 있는 것이 떠올라 엄마에게 전화했고 퀵서비스로 차키를 받는 것으로 사건은 무사히 해결되었는데, 그 사이 나는 불안이 극에 치달아 퀵서비스 업체에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도 하고(여러 업체에 전화했는데 희한하게 같은 곳이었다. 여기저기 의뢰하지 말라고 쓴소리를 들었다.), 엉엉 울기도 하고, 곧 지방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남자친구를 따라가버려야겠다고까지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행각이지만 당시엔 진심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나의 이런 요상한 발작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 주던 무던한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어 10년간 덤덤하게 나의 깜빡증을 받아주어서인지 불안증이 좀 옅어졌다는 것, 화장실에서는 절대로 손에 차키나 핸드폰을 들지 않게 되었다는 것, 주차라인에 상당히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제 와서는 아들의 불안이 본능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점이다.
치과치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쑥스러움이 살짝 묻은 목소리로 엄마가 식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과 편지 잘 봤다고, 고맙다고 했다.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아들은 영어학원으로 출발했다. 기특한 녀석.
그리고 10분 후, 어깨 통증 치료를 위해 정형외과에서 접수하고 대기하던 중 다시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영어학원 도착했는데 깜빡하고 가방을 안 들고 왔어."
어떡하지? 하는 아들의 물음표에 불안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랄지.
학원에 가면서 가방을 놓고 갔다고… 음.
"아들아, 오늘 배울 부분을 복사하면 될 거야. 연필은 빌리면 되고. 언제나 방법은 있단다. 선생님께 도움 요청해 봐."
알겠다는 아들의 목소리가 맑은 날 우비를 입고 뛰노는 아이처럼 발랄하게 들려왔다.
'피식'하고 웃음이 삐져나왔다. 기억은 안 나지만 최근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가벼워진 어깨를 쭉 폈다.
언제나 방법은 있단다.
아들의 핸드폰과 함께 놓은 편지. 너무 엄마가 하고 싶은 말 일색이긴 하지만, 의외로 새겨들은 것 같다.
+후일담
아들은 영어학원 정규수업 전 숙제반에서는 책을 빌릴 수가 없어서 복사를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 해맑게 웃으며 컴퓨터로 하는 숙제를 해서 괜찮았다고.
거 봐, 언제나 방법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