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담은

유리창에 부서지는 눈송이들이 새벽을 알린다.

이른 4시 35분

누군가는 아직 단잠에 들어 있을 시간.

누군가는 하루를 빨리 시작하기 위해 차를 끓이고 있을 시간.

어쩌면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일지도 모르는 시간.


하지만 나는 또 잠들지 못했다.

매일 밤 아무리 피곤해도,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도, 잠의 요정은 늘 나를 비껴간다.

겨울 밤의 깊은 고요조차 나를 쉬게 해주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단어들 때문일 것이다.

그 단어들은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귀에 바짝 들러붙어 무슨 말인지 알수 없는 소리를 쉼없이 질러댄다.

때로는 세상을 뒤흔드는 불협화음처럼 머릿속을 울린다.

튀어나오고 싶어 사방으로 부딪히는 것처럼 머릿속은 계속 요동쳤다.


나는 결국 그 단어들을 토해내지 않으면 그 겨울밤을 견딜수가 없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래서 잠들지 못한 새벽 4시35분에 책상앞에 앉아 내 머릿속에 갇혀있던 단어들을 꺼내어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부끄러운 단어, 미안한 단어, 애통한 단어, 슬픈 단어.

그 단어들은 더 이상 숨어있고 싶어하지 않았다.

더 이상 갇혀있는 것이 고통스러웠는지 문틈을 비집고 나와 머릿속을 두드렸다.


겨울.

내 마음은 늘 겨울이었다.

뼛속까지 시린 겨울.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계절.

나는 이계절을 두려워하면서도 놓치 못했었다. 이것 마저 놓아버리면 나에게 남는건 하나도 없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면서도 내 안의 틈새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웃고, 일하고, 아이를 챙기고, 평소처럼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마음의 바닥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순간, 그 미세한 틈은 무섭도록 격렬하게 터져버렸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일들이 겨울과 만나면 그렇게도 아팠던 이유를 알것같았다.

나는 겨울이 내 마음에 오래 머문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계절이 다가올 때마다 내 마음은 예고 없이 요동친다.


그날도 그랬다.

하얀 눈이 샤라락 거리며 예쁘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눈송이를 느끼고 싶었다.

밖에는 추운날이었는데도 아이들은 눈을 보고 신이나서 뛰어다니고, 연인들은 서로의 손과 눈을 맞잡으며 사랑을 확인 하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생각이 났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눈이 바닥에 떨어질 때 마다 돌림노래처럼 수도 없이 했던 말.

불안함과 아픔을 덜어내기 위해 했던 나에게 했던 위로.

하지만 나에게 치유되지 못한 아픔이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사소한 서운함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불안들,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이고 싶어 애쓰다 끝내 무너져버린 나날들,

강하게 버텨보려다가 오히려 상처 입었던 순간들.

그 감정들은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내가 방심한 바로 그 틈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창문을 얼른 닫았다. 그러나 그 찰나에 작은 틈 사이로 시린 바람과 함께 차가운 눈이 들이쳤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나는 견딜 수 없어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이 내 안에서 너무 크게 울렸다. 그 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글쓰기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은 떨렸다. 처음엔 단어 하나 쓰기도 벅찼다. 하지만 쓰기 시작하자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문장을 비집고 쏟아져 내렸다.

‘내가 이렇게 힘들었다는 걸 나 자신도 몰랐구나.’


쓰면서 울었고, 울면서 또 썼다. 글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마음의 신호 같았다.

그밤, 나는 나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글이 나를 붙잡아 세웠고 나는 끝내 그 자리에서 무너져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쓴 후에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좋은 사람'으로 살아오느라 내 마음의 계절을 챙기지 못했음을.

누군가에게 맞춰 살아오다 정작 나에게는 한 번도 솔직하지 못했음을.


감정을 감추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던 어린시절,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일보다 침묵하는 편을 택해야만 했던 시간들. 말하는 순간 사람들에게 버려질까바, 나를 드러내는 순간 더 상처 받을까바, 늘 숨죽여 살아야 했던 날들.


그래서 감정은 늘 가슴 깊은 속에서 굳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고, 지금 이 겨울이 돌아오면 그 기억의 조각들이 얼음처럼 뾰족하게 깨져 비로소 감정의 형태로 올라와 나를 찔렀다.

그때 글쓰기는 내게 감정을 녹여주는 유일한 온기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고 난 다음날, 세상은 어제와 달라지지 않았다.

하는 일도, 일상의 무게도 똑같았다. 하지만 내 마음만은 조금 따뜻해져 있었다.

한 번 울고, 한 번 말하고, 한 번 쏟아낸 마음은 더 이상 나를 옥죄지 않았다.


글이 없었다면 나는 그 감정을 또다시 깊은 곳에 묻어두고 언젠가 더 매서운 겨울을 맞이했을 것이다.

글은 나를 그 무너짐의 순간에서 건져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했고, 이해는 결국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일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음 계절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쓴다.

무너지는 순간을 견디기 위해, 그리고 다시 나로 돌아오기 위해.

따뜻한 봄으로 걸어 들어가기위해.

내 안에는 아직도 냉랭한 겨울이 찾아온다.

겨울. 그림자도 얼어붙는 시간.

그 계절이 내 마음을 건드릴때마다 나는 글을 쓴다.

글은 내게 얼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작은 온기, 얼은 몸을 녹여주는 모닥불 같은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시 흔들리고 글을 통해 다시 회복될테니.

계절은 나를 부르고 나는 천천히 한문장을 꺼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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