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예고도 없이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 이름은 만성 알레르기. 그 녀석은 내 일상의 담벼락을 야금야금 허물더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 금지구역으로 내몰았다. 아침저녁으로 삼켜야 하는 세알의 항히스타민제와 두 알의 위장약, 그리고 한알의 면역억제제, 도합 여섯 알의 약이 내 하루를 지탱하는 서글픈 뼈대가 되었다.
식탁 위는 더 처참했다. 밀가루, 땅콩, 파인애플, 아몬드, 계란, 키위.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돌던 것들이 이제는 나를 공격하는 무기로 변해버렸다. 삶은 한 순간에 불편함의 연속이 되었다. 빵집 앞을 지나갈 때의 고소한 냄새는 그리움이 되었고, 메뉴판을 정독하는 일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검열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점심시간은 그저 한 끼를 해결하는 시간이겠지만, 직장인에게 이 시간은 고된 오전의 끝에 만나는 유일한 쉼이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을 잠시 내려놓고, 따뜻한 밥 한술에 마음을 녹이는 안식의 시간. 그런데 알레르기가 생긴 이후, 나의 점심은 더 이상 온전한 쉼이 아니었다.
나 한 사람의 까다로운 체질 때문에 동료들이 먹고 싶은 메뉴를 포기하거나 식당을 찾아 헤매야 하는 상황. 그 소중한 휴식 시간을 나 때문에 망치게 된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입을 닫는 쪽을 택했다. 배려받지 못하는 서운함보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내가 먹을 수 있는 걸 용케 찾아내면 그만이라고, 그것이 세상과 섞이기 위한 나의 비겁하고도 절박한 예의였다.
오늘 간 식당은 아주머니 홀로 운영하시는 작은 가게였다. 메뉴판은 단출했다. 찌개류는 죄다 2인 이상 주문이었고, 혼자 먹을 수 있는 건 칼국수와 비빔밥뿐이었다.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이 급해서 동료들에게 주문을 하고 자리를 떴다.
"저는 비빔밥이요."
자리로 돌아오자 내 자리에는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었다.
"비빔밥이 나오는데 오래 걸린다고 해서 김치찌개로 바꿨어요. 괜찮아요?"
나 없이 결정된 일이었지만, 밀가루만 아니었으면 아니면 되는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아무거나 먹어도 되는 나는 메뉴가 바뀌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서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분들은 모두 칼국수를 주문한 것이었다.
"저 때문에 김치찌개 드시는 거 아니에요?"
상무님은 머쓱하게 웃으셨다. 그 찰나의 침묵과 짧은 웃음 속에 담긴 진실을 나는 알고 있다. 홀로 비빔밥을 기다리며 남들의 식사 속도를 맞추려 체할 듯 수저를 놀릴 나의 조급함을, 혹은 혼자 밥을 먹으며 느낄 애잔한 소외감을. 상무님은 나를 위해 기꺼이 먹고 싶은 칼국수를 접고, 나를 배려하신 거였다. 그것은 하마터면 고립될뻔한 나의 쉼표를 지켜준 다정한 개입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상무님의 배려는 어떤 색깔일지 그려보았다. 그것은 겨울날 아랫목에서 나누어 먹던 포근하고 말랑한 귤색이었다. 딱 사람의 체온만큼 따스한 귤색. 그 빛이 내 좁아진 식탁 위로 툭 떨어져 어두웠던 마음 한 구석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기꺼이 희생하며 누군가의 자리를 지켜준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동안 민폐 끼치지 않는 것만이 최선이라 믿으며 나를 가두어왔지만, 상무님은 기꺼이 타인의 짐을 함께 나눠드는 것이 진짜 배려임을 보여주셨다.
알레르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는 줄어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온도는 더 선명해졌다. 상무님이 건넨 배려로 마음속에 건네받은 귤색 온기가 가득 찼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좁아진 마음 위로 따뜻한 색깔 하나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오늘따라 씁쓸한 약 끝맛이 희한하게 달큼하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내 마음 한구석에 상무님이 두고 간 귤색 다정 한 조각이 여전히 기분 좋게 녹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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