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시작.
태어날 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들어서 알게되는 경우는 있는데, 나는 어릴 때 친척 어른들에게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는 어머니의 입덧이 심하여서 대부분의 음식을 드시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어머니가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그때 바로 드셔야만했고, 그렇지 못하면 드신 음식이 거의 없어 위험했다. 그래서 밤에도 아버지께서는 기꺼이 어머니가 드시고싶은 과일을 사러가셨는데, 그러던 중 사고를 당하셔서 다리를 다치셨다.
트럭에 치이는 큰 사고였는데 다리에 철심을 박으시는 수술을 하셔야 했다. 하지만 그런 커다란 대가를 지불해도 어머니의 입덧은 나아지질 않았고 나는 굉장히 어렵게 태어났다.
태어나고도 문제였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어른들에게 줄곧 '울보, 이제는 안 우네?'하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지쳐 쓰러져 잠들 때까지 울었고,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부모님은 수면부족을 호소하시며 외할아버지댁을 찾으셨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외할아버지 품에만 안기면 입을 다물고 울음을 뚝 그쳤는데 이 부분이 친척 어른들과 부모님이 가장 기이히 여기시는 부분이었다.
나는 다른 어른들에게 안겨도 울었고, 어머니 아버지 친구분들인 이모, 삼촌들에게 안겨도 울었다. 밥을 줄 때도 울었고 겨우 밥을 먹으면 또 울었다. 소변 대변을 보고나서도 울었지만 아무런 용건이 없어도 울었다. 그냥 계에에에에속 울었다. 쉬지않고 울어서 모든 어른들이 나를 힘들어 했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외할아버지 품안에만 안기면 울음을 뚝 그쳤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 외할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내 사람을 사랑하는 태초이다. 아마.
외할아버지는 내게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었는데, 나는 젓가락질부터, 힘들면 학원이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혼나거나 무서운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까지 외할아버지에게 배웠다.
외할아버지는 꽤 무서운 분이셨는데 도덕적 부분에 굉장히 엄격하셨다.
작은 것도 지키게 하셨고 스스로하도록 하셨는데, 그래도 나는 외할아버지를 사랑했다.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부터는 외할아버지 뒤를 졸졸 쫒아다녔는데 그때 마다 외할아버지께서 '나를 놀리려고 계속 따라다니냐?'하셨다.
설겆이하실 때도 따라가서 지켜보고 마당을 쓰실 때도 따라가서 지켜보고, 외할머니 아프시다고 국을 끓이실 때도 지켜보고 외할아버지가 방문을 닫고 방석을 침대 위에 피신 후에 목탁과 염주를 꺼내드시고 불경 테이프를 틀고선 불경을 외시며 기도하실 때에도 문틈으로 외할아버지를 지켜보다 혼이 났다.
그래도 나는 지치지 않고 외할아버지를 따라다녔는데 혼이나도 외할아버지가 굉장히 좋아서였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집에 자주 계시지 않았던 부모님이 주시지 못한 안정감을 주셔설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갓난 아기 시절 불가사이하게 외할아버지께 안기면 울음을 그친 그때부터 나는 외할아버지를 사랑했다.
외할아버지 피셜로, 어머니를 똑 닮은 나는 어머니의 어린시절을 복사하듯 행동하기도 해서 똑같이 외할아버지 옷장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예쁜 비단옷들을 마구 만지고 얼굴에 문지르면서 놀기도 했는데, 무척이나 혼이났지만 멈추지않고 외할아버지 옷장에 들어갈 정도로 외할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도 시골이라 집에서 치루어지는 장례에, 병풍 뒤 놓인 외할아버지 관을 찾아가 언제 일어나시는지를 물어보았다.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것 같다.
태초가 시작되었으면 이제 번성이 이루어져야하는데 내 사랑은 시작하고 자라남과 동시에 무너졌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와 다른 태초를 시작하여 번성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아니, 내 태초의 사랑이 무너진 것과는 상관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태초의 시작은 어렵기만 하다.
어찌되었든, 내 태초의 시작은 사랑이었고 태초의 사랑은 무너졌고 그럼에도 사랑을 가지고 살아있다.
누군가와 어떻게 또 다른 태초를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태초의 시작은 사랑이었으니, 또 다른 태초의 사랑도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