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인데, 이것도 나일까

차가 우려나옴. 다 우려나옴.

by 담하dam ha

차를 우려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추운 겨울 날에는 특히 따뜻한 차를 많이 찾게된다.

커피라고 하더라도 에스프레소는 압출하는 것이고 드립커피도 우려마시는 것이니 넓은 의미에서 차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는 무언가를 우려서 마시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도 그 중 하나이고, 우려 마시는 차도 좋아하고 커피도 좋아한다.

그리고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나 그림을 우려 먹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대중 문화에 속한 것들을 접하는 속도가 아주 빠르지 않다.

느리다고 보기는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빠르지는 않다.

하나를 접하려면 굉장한 공을 들여야 한다.

조금씩 천천히 무엇을 말하는가.

이 글이나 그림이나 영상은 뭘 말하는가.

특별히 집중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들이다.

고민하고 상상하고 또 다른 파생된 이미지를 떠올리고 제 2안, 3안, 4안, 5안...무한대로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로 떠난다.

마치 우려내지는 찻잎들로부터 파생된 색으로 물이 물들어가는 것처럼.

나는 예술을 우려 먹는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우려 먹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려낼 차를 골라내어 따뜻한 물에 우리듯이, 우려낼 작품을 바라 보면서 천천히 내 마음 속을 물들인다.

찻잎을 우리는 것도 좋지만.

작품을 우리는 것은 더욱 좋다.

현생을 힘들게 지내다가도 하나의 찻잎인데도 불구하고 다양한 맛으로 우려지는 놀라운 마법을 경험하고나면 힘이 솟기도 한다.

지식을 더 채워야겠다고 생각하며 공부를 하기도 하고.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새로운 세상을 떠올리며 잠시 슬픔을 잊기도 한다.

아픈 마음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힌트를 얻기도 하고, 물든 마음의 색을 보고 어떤 때는 따뜻함을, 어떤 때는 시원함을 느낀다.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고.

새로운 창작자의 인생을 알아보며 감동하기도 한다.

찻잎이 다 우려나올 때까지 나는 찬찬히 기다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번 보면서 다 우려날 때까지, 혹은 새로운 맛으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할 때까지 기다린다.

천천히 우린 작품이 여럿이지만 그 중에 대표를 뽑자면, 주디 갈란드가 출연한 1960년대 오즈의 마법사 영화와 한국 드라마 비밀의 숲이다.

1960년대 오즈의 마법사는 출연진과 제작자들의 복지에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악명 높지만 제작 중간에 칼라 제작이 가능해져서 동산을 걷는 장면부터 다양한 색상이 들어차는 장면을 볼 때면 다양한 생각이 든다.

마치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아서 그 장면 하나를 보려고 처음부터 영화를 시청한다.

주디 갈란드가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도 좋아하지만 밝아지는 장면이 내 세상에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다 주는 것만 같다.

다 같아 보이지만 모두 제각각 사연을 가진 개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비밀의 숲도 비슷한데.

주인공의 연기를 볼 때마다 감정적 공감이 안 되지만 이해가 가능하고 무의식 중에 공감하고 있는 그 어려운 장면을 연기해 내는 것에 감탄을 한다.

다른 부분들도 좋지만 연기자들의 연기가 날 그 세계로 데려가 준다.

다른 많은 작품들도 그러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실물로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은 후, 반 고흐의 팬이 되기도 했고, 요네즈 켄시의 플라밍고를 듣고 일본 전통음악에 대해 알아보고 또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듣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자리에서 몇 천번을 듣기도 했다.

너무나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언급하기 힘들지만.

나는 이렇게 천천히 우려내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껏 본 많은 작품들이 내 마음에서 우려나와 다양한 색으로 나를 물들이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쇼츠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나는 여전히 롱폼이 좋다.

뒤쳐진 것이 아니라.

나는 우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