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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Oct 13. 2019

사랑하는 사람을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날이 온다면

사진은 징검다리의 돌 같다

엄마 어릴 적에는 학교 행사 때 사진사가 따라다녔다고 한다. 수학여행이나 소풍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나중에 사진을 신청하면 받았다고. 앨범에 꽂혀 있는 몇 안 되는 흑백사진은 이름 모를 사진사의 작품이었다. 내 기억에도 수학여행 같은 때에 사진사가 있었다. 개인 사진을 찍어주러 온 것은 아니고 졸업앨범에 수록할 단체 사진을 찍어주시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카메라 하나씩 들고 다니는 때가 되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내 스마트폰 앨범에는 책이나 음식이 대부분이다. 음식 사진도 항상 찍는 것은 아니고 남들이 다 찍어서 뻘쭘할 때 주로 찍는다. 지인 A는 음식 사진을 보면 같이 먹은 사람을 떠올린다 했지만 나는 보통 음식 사진을 보면 이때 친구 사진도 좀 찍을 걸 하고 아쉬웠다. 그런데도 막상 친구를 만날 때는 사진 찍는 걸 까먹고 만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더니...)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해외 직구로 구입한 스마트폰을 썼다. 저렴한 맛에 샀지만 카메라 성능은 좋지 않았다. 과장하자면, 화질도 안 좋고 손떨림 보정도 안 되며 어두운 곳에서는 찍으나 마나 한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3년 넘게 쓰니 셔터만 누르면 전원이 꺼져 버렸다. 켜지는 데도 한참이나 걸려서 결국 사진을 찍지 못하고 넘어가야 했다. 어차피 사진을 잘 안 찍으니 참고 쓰자며 버텼다. 해외로 출장 다녀온 뒤로는 유심마저 인식하지 못했다. 직구로 샀으니 A/S도 안 되고 여러 방법을 찾았으나 결국 실패. 그동안 겪은 불편함에 괘씸죄까지 조금 보태서 최신 기계로 바꿨다. 새 모델이 나오고 또 나온 뒤에야 구 모델을 사던 내가 정말 큰맘 먹고 산 것이었다. 


새 스마트폰은 사자마자 제 값을 톡톡히 했다. 스마트폰을 사고 얼마 안 가 부모님과 여행을 갔는데 어떻게 찍어도 사진이 잘 나왔다. 나처럼 사진을 못 찍는 사람도, 그럴싸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다니. 카메라 성능을 보고 감탄했다. 사진이 잘 나오니 많이 찍었다. 많이 찍으니 건지는(예쁘게 잘 나온) 사진도 여럿 생겼다. 이것이야말로 선순환이구나.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어색해하던 부모님도 지금은 꽤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언제 카메라를 들이대도 어색해하지 않으신다. 나를 사진사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랄까(그렇다고 전문 모델 수준이라는 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날이 오면 어떨까.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나를 가장 예뻐하신 할머니도, 수업 시간 카리스마 넘쳤던 선생님도, 방학하면 보자던 친구도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만날 수 없다. 사랑하는 만큼, 생각하는 만큼 그리움이 되었다. 흐려지는 내 기억에 다시 한번 도장을 찍어주는 게 사진이었다. 그 날 그 순간으로 건너갈 수 있게 돌 하나 놓아주는 게 사진이었다. 조금 더 수월하게 건너가려면 돌이 촘촘히 놓여 있는 게 좋다. 앞으로라도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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