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해 Oct 14. 2019

망설이는 대신 일단 정하는 사람

늘 맛있는 것만 먹고,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무언가 고르는 일이 무척 어렵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도, 여행지를 고르는 것도. 인터넷이 없는 시기엔 어떻게 선택하고 결정했지? 블로그가 없는 시대에는 어떻게 했지? 바꿔 생각하면, 이렇게 치열하게 후기를 검색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친구들에게 평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거기 어땠어? 어디에 뭐 새로 생겼더라 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나마도 거의 묻지 않았다. 더 가까이, 대학생일 때만 해도(그때도 블로그는 있었지만) 후기 한두 개 찾는 수준이었다.


누군가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서, 음식 하나에도 실패하기 두려워해서 이런 일이 생긴다고 말한다. TV에서였나 기사였나 포스팅이었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데 당시에 그 내용을 듣고 놀랐다. 정말 그런 사회인 건가 싶어서. 내가 그래서 그랬나 싶어서. 점심 한 끼라도 맛있는 것 먹고 싶다, 먹으나 마나 한 것은 먹기 싫다. 나도 그랬다. 그 생각이, 사소한 일에서조차 실패하기 싫은 마음이었을까. 


그렇다고 내가 본 후기의 작성자와 내 입맛이 같은 것도 아닐 텐데. 누군가 좋다고 하면 무작정 따라 했다. 남이 좋다 하면 나에게도 좋을까? 아니다. 맛있다고 해서 갔는데 내 입엔 영 안 맞을 때도 많았다. 다른 사람 말만 듣고 따라다니다간 내 취향도 없어지겠다. 아니지, 애초에 내 호불호를 파악할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었다.


『혼자가 혼자에게』(이병률 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선택해야 할 순간에, 막상 선택보다는 망설이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는 것이 사는 일의 속성이겠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망설이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무조건 선택하고 나서 후회할 때 후회하더라도 왠지 그것이 살면서 뭔가 밀고 나가는 기분이 들어서라고 해야 할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뭘 먹어야 할지 특별한 것을 먹어야 할지를 망설여야 하는 시점 앞에서 나는 어떻게든 박력 있게 정하는 일을 먼저 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뭐든 일단 저지르고 마는 유형의 사람이 되겠다고 입장을 정했다 해서 안 좋은 결과만 따라오는 건 아니니까. - 261쪽


'일단 저지르고 마는 유형의 사람이 되겠다고 입장을 정했다 해서 안 좋은 결과만 따라오는 건 아니'라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그처럼, 나도 그렇게 선언하고 싶다. 아직 선언은 못하고 공감의 박수만 쳤지만.


늘 맛있는 것만 먹을 수는 없다.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도 없다. 누군가의 삶이 그렇듯 내 삶도 그렇다. 나라고 좋은 일만 있겠어? 물론 머리로만 안다. 마음속 깊숙이는 좋은 일만 있고 싶다. 그러나 오늘 있는 좋은 일은, 어제 겪은 나쁜 일 덕분에 더 빛날 수 있음을 안다. 오늘 먹은 이 음식이 맛있는 건, 며칠 전 먹은 실패한 메뉴 덕분임을 무척 잘 안다.




*출처_ 이병률 저, 『혼자가 혼자에게』, 달, 2019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사람을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날이 온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