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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23. 2019

내가 시도해본 퇴사 방지책 5가지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죽음

야근하면 다음 날 더 피곤하고, 그 영향으로 효율도 떨어진다. 효율이 떨어지면 일을 못한 만큼 또 야근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악순환이다. 그래서 야근은 할 수 있다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행히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는 아니라서 평소에는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한다. 오늘은 근무 시간에 딴짓을 많이 해서 양심상 야근을 했다. 오늘까지 해야 할 업무량이 있기도 했고. 월급 루팡의 나머지 공부였다랄까.


동료들은 퇴근하고 없는 사무실(물론 몇몇은 있었지만)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첫 직장 다닐 때가 생각났다. 창가에 놓인 텅 빈 화분 두 개도 옛 생각에 잠기는 데 한몫했다. 화분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는 나를 이곳에 추천해준 이가, 이 회사에 입사할 때 받은 것이다. 두 화분 모두 식물은 죽었고 흙만 남았다. 뭐라도 키울까 씨앗을 심었는데 내가 몇 번 쳐다보다 말았더니 새순만 났다가 곧 죽어버렸다.


첫 직장에서는 직접 화분을 사다가 바질 같은 허브 몇 개 키운 적이 있다. 입사하고 두 번째 해에 했던 퇴사 방지책이었다. 생각난 김에, 그동안 내가 시도해본 퇴사 방지책 5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1. 치킨 치킨 치킨


처음 퇴사 고비가 왔을 때는 치맥으로 달렸다. 물론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해 맥주보다는 치킨에 더 초점이 있었지만. 퇴근 후 친한 이들과 옹기종기 모여 치킨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래, 이렇게 잔 부딪히며 맛있는 거 먹고 푸는 거야. 하면서 퇴사 충동을 눌러보았다. 하지만 저녁에 먹는 기름진 음식과 술은 내 몸을 망가뜨렸다.


한 달을 야식으로 달렸다면, 그다음 한 달은 보약으로 달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내 몸을 망가뜨리는 일은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두 번째 퇴사 고비가 왔을 때는 치킨 말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2. 식물 키우기


그렇게 찾은 것이 식물 키우기였다. 갑자기 회사로 화분 여섯 개를 주문하니, 이사님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으셨다. 아니, 회사에다 무슨 화원이라도 차리려고 그래? 하시면서. 화원을 차리기엔 너무 작은 화분이긴 했지만... 바질, 애플민트, 로즈메리 같은 허브를 심었다. 창가 자리라 그런지 쑥쑥 자랐다. 애플민트 잎은 잘 뜯어서 얼음틀에 하나씩 넣어 얼음을 얼렸다. 그 얼음을 넣어 시원한 물을 마시면 졸음도 사라지고 좋았다. 바질은 주로 야근할 때 햄버거를 시키면 그 안에 넣어서 먹었다. (적어놓고 보니 먹으려고 키운 것 같네?)


식물 키우기가 퇴사 충동 참기에는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날이 추워지면서 창가에 있던 허브들이 힘 없이 비실거리더니 하나둘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얘들도 못 견디겠나 봐요. 하면서 퇴사 욕구가 더 커진 역효과를 얻었다.


3. 운동하기


세 번째 퇴사 고비가 왔을 때는 운동을 했다. 일부러 가장 격렬한 것을 찾았다. 이왕이면 뭐라도 두드려 패고(?) 싶어서, 샌드백을 칠 수 있는 복싱, 킥복싱 체육관을 찾아봤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 가야 했지만 시설이 깨끗하고 코치님이 친절한 킥복싱 체육관을 다녔다. 어느 날에 샌드백은 사장님도 되었다가, 외주자도 되었다가, 나 자신도 되고 그랬다.


이 방법이 위 세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체육관 등록기간이 다 끝나기도 전에 퇴사했다. 그래도 이 방법을 셋 중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충동적으로 퇴사 카드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신중히 고민했고 퇴사를 결정했다. 회사에서도 수긍할 만한 상황이었고, 떠나는 나도 아쉬운 것이 없는 퇴사였다.


4. 책 읽기


책 읽기는 두 번째 직장에서 시도한 방법이다. 운동하기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터라 처음엔 운동을 했었다. 사택에서 출퇴근하던 첫 직장 때와는 달리, 출퇴근으로도 체력을 너무 쓰는지라 운동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 고비를 극복하고 체력을 길렀으면 좋았을 텐데 그전에 백기를 들었다.


책 읽기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려고 시작했던 일인데 퇴사 방지책으로도 효과적이었다. 재작년부터인지, 작년부터인지 서점가에 퇴사 열풍이 불었다. 덕분에 나도 퇴사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퇴사를 말하는 책을 읽으면서 퇴사 충동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남들도 다 나처럼 힘들구나 느꼈기 때문이었다.


5. 글쓰기


글쓰기는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도전 중인 일이다. 내가 어떤 때 퇴사하고 싶어 지는지, 퇴사하고 난 이후에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런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퇴사 방지책이라기보다 퇴사 준비용이 된 듯한데. 그래도 글쓰기 덕분에 하루하루 연장하고 있다.




화분 이야기하다 글이 길어졌다. 입사 축하 선물로 화분을 받았을 때, 다니는 동안 죽이지 말고 잘 키워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본래 심어져 있던 것이 스투키였나 산세베리아였나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한 생명을 무책임하게 떠나보낼 정도로 내 몸 하나 추스리기 힘들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또 어떤 방지책을 써야 남은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퇴사 방지책이라는 게 진 시황제가 찾던 불로장생 비법 같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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