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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26. 2019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펑펑 울었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죽음

“할머니가, 너 왜 안 데려왔냐고 하시더라.”


엄마가 말했다. 나는 퉁명스레, “다음에 가면 되잖아.” 했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지만 이런 날에는 같이 할머니 댁에 갔어야지. 뭐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날’의 정체가 제삿날이었는지, 다른 가족 행사였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저녁에 잠시 가서 얼굴 뵙고 오는 정도의 일이었던 것 같긴 하다.


엄마가 알기로, 그날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할머니 댁에 따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싸움이 잦았던 오빠와 나는, 오빠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갈등이 더 심해졌다. 이제는 싸움이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맞는 꼴이었다. 엄마 아빠는 가게 일로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았고 나를 보호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척하며 집 밖으로 나돌았다.


할머니 댁에 가야 하는 그날에도, 오빠를 피해 집 근처에 숨어 있었다. 우리 동이 보이는 놀이터에 숨어서, 우리 집 불이 꺼지기를 한참이나 기다렸다. 배가 고팠고, 어둠이 무서웠고... 1층부터 하나하나 세어 우리 집 호수까지 올라가며, 서러웠다. 가족들이 떠난 뒤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에 불을 다 끄고 자는 척했다.


그렇게 끝난 이야기였다면 나는 그날을 쉽게 잊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가면 된다던 내 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날이 할머니를 뵐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내가 그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었다.


바보 같은 나. 싸움 좀 하면 됐지. 한 대 좀 맞으면 됐지. 그게 뭐라고 밖으로 나돌았을까. 그게 뭐라고 혼자 놀이터에 숨어 청승 떨었을까. 그게 뭐라고, 그게 뭐라고... 장례식장 한 구석에서,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펑펑 울었다.


손주들 중 나를 가장 예뻐하셨던 할머니. 언제나 내 편이었던 할머니. 나를 기다리셨을 할머니. 내가 들어오지 않는 현관문을 계속 바라보셨을 할머니. 할머니와 그렇게 이별했다. 준비도 없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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