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도 내편이 되어보자
지난주 회의에서 나는 조금 다쳤다.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하나하나 다시 꺼내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시간의 공기만은 오래 남았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마음 한쪽이 계속 서늘했다.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일은 끝났는데 감정은 끝나지 않는 일.
나는 회사에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해낼 때의 속도와 에너지를 믿는다. 어떤 사람의 한마디 덕분에 일이 풀리기도 하고, 내 생각보다 더 좋은 방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호의적이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애써 배려해 주고, 같이 해결해 보자고 말해준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유난히 날카롭고, 어떤 사람은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긴장하게 만든다. 대놓고 적대적이지는 않아도 묘하게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태도가 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냥 원래 그런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런 사람과 마주하고 나면 마음이 쉽게 흐트러진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미 어른이고, 회사에 다닌 지도 꽤 되었고, 그동안 여러 일들을 겪어 왔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말투 하나, 시선 하나, 무심한 반응 하나에 아직도 상처를 받는다.
상처를 받는 순간에는 늘 비슷한 생각이 따라온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만만해 보였나.
혹시 내가 부족해서 이런 대우를 받는 걸까.
상대의 태도는 짧게 지나갔는데, 내 안에서는 그 장면이 훨씬 길게 재생된다. 그 사람이 했던 말보다 내가 내게 덧붙이는 말이 더 많아진다. 아마 직장에서 받는 상처가 유독 오래가는 이유는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받은 상처 위에 스스로 만든 해석이 한 겹 더 덮인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잊힌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질기고, 또 생각보다 잘 회복된다. 며칠이 지나면 그 회의는 다른 일정들 사이로 밀려나고, 나는 다시 해야 할 일들을 한다. 메일을 보내고, 자료를 정리하고, 또 다음 회의에 들어간다. 그렇게 평소처럼 지내는 척하다 보면 정말로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이다.
잊을 만하면 또 마주치고, 다시 함께 일하고, 또 비슷한 분위기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상처는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덮어두었다가 다시 꺼내지기 쉽다.
예전에는 이런 마음이 들면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더 정확해야지. 더 단단해져야지.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필요한 것은 단단해지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누군가의 차가운 태도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내가 바라는 방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사람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고, 분위기를 느끼고, 작은 결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내가 갑자기 무감해질 수는 없다. 그리고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대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상처를 곧바로 내 가치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다.
누군가가 나를 불편하게 대했다는 사실과,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결론은 같지 않다. 그 사람이 내게 차갑게 말했다는 사실과, 내가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도 다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인데, 막상 마음이 다친 날에는 그 당연한 말을 자꾸 잊게 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설명이나 반박보다 먼저, 회복일 것이다.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상처받은 날에는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기보다, 나를 다시 내 편으로 데려오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용히 앉아서 숨을 고르고, 오늘 있었던 일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고, 내 마음이 너무 깊은 곳까지 내려가지 않게 붙잡아 주는 시간. 누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보다, 그 일 이후에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
아마 내가 찾고 싶은 것은 그런 작은 멈춤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다정할 수는 없다.
그건 회사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비슷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유 없이 호의적이고, 어떤 사람은 이유 없이 날카롭다. 나는 그 모든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고, 그들의 태도를 선택할 수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날의 차가운 공기가 내 안에 오래 머물게 둘지, 아니면 조금씩 밖으로 내보낼지.
누군가의 무례함을 내 가치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그 사람의 몫으로 남겨둘지.
그리고 무엇보다, 상처받은 날의 나를 끝까지 내 편으로 둘지.
회사에서는 가끔, 일보다 사람에게 다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날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상처받았다는 사실과
내가 작아졌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다시 내 편으로 데려오는 쪽을 연습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