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부작용

by 데미안

글을 쓴 뒤, 부작용이 하나 생겼다. 나는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둘로 분리되고 있다. 좋은 쪽과 나쁜 쪽, 정확히 둘로.

쓸 때의 나는 무척이나 좋은 사람이다. 그건 내가 '좋은 사람'일 때만 쓰기 때문이다. 샤워를 마치고 난 뒤 기분 좋은 밤 침대에서, 푹 자고 일어나 개운한 아침의 지하철에서, 할 일 없이 평온한 오후의 카페에서 나는 쓴다. 어떤 스트레스도 없이 걱정거리 조차 희미해진 순간, 나는 부정할 수 없이 좋은 사람이 된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된 채로, 내가 가진 가장 좋은 부분을 아주 밉지 않은 단점과 함께 꺼내어 놓는다.

짜증과 불평불만이 많은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 슬쩍 빼고 적는다. 마치 미처 몰랐다는 듯이, 또 실수라도 한 듯이. 그래서 글 속의 나는 서툴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고, 우애 있는 동생이며 건강한 생각이 깃든 회사원일 수 있다. 나는 때로 그것이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져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전혀 모르고 알더라도 일부분만 알 것이다. 내 글을 보고 그들은,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나에 대해서 맘껏 상상할 것이다. 나는 가끔 그 사실이 불편하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글에서 좋은 사람인척 하는 것은 과연 기만일까. 하지만 거짓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그러니 나쁜 것에 대해서라면 아무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인 나는, 일부러 그들을 우롱하는 것은 아니라고 변명한다.

글로 적히지 못한 나쁜 감정의 잔여물, 나조차 사랑하기 어려운 미운 것들은 고스란히 내 안에 쌓인다. 좋은 것들은 모두 글로 적히거나 글로 쓰이기 위해 아껴 두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글을 쓰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 특히 일을 하는 순간의 나는 그런 것들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오늘도 나쁜 사람인 상태로 수 없이 많은 가정들로 이루어진 후회와 희망 같은 것들을 뒤섞어 고민한다. 글을 쓰는 나라면 이렇게 짜증 내지 않았을 텐데, 좀 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았을 텐데,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남을 비난하지 않을 텐데, 힘들어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텐데.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어 글을 쓰지만 그래서 동시에 나쁜 사람이 되어 간다. 이런 종류의 자아 분열과 이중성을 요새는 부캐라고 부르며 유행처럼 즐기고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나도 글 쓰는 나와 회사원인 나를 분리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천천히, 하릴없이 둘로 쪼개지고 복잡해진다. 나는 글쓰기의 이 치명적 부작용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