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의 '한 길 사람 속'을 읽고

by 데미안

1930년대에 태어난 작가의 글. 이 정도면 세대차이가 아니라 시대 차이다. 요새 유행하는 트렌디한 글은 아니지만, 그 시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이야기가 나오니 읽는 맛이 담백하니 좋다. 그리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다가도 그 흉내 못 낼 자연스러움에 이내 감탄하게 된다. 그녀라면 마치 말하는 대로 노래가 되는 어느 가수처럼, 생각하는 대로 적어내기만 하면 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마치 이야기라도 듣듯이 책을 읽다가 그 사이사이 빛나는 문장을 만나게 되면 잠깐 멈추게 되는 것이다. 아 박완서 작가님 글 정말 잘 쓴다, 라고.

나는 글도 잘 못쓰고 요리도 잘 못하지만 글쓰기를 요리에 비유하는 일을 좋아한다. 재료와 기술로 무언가 만들어낸 다는 점이 비슷해서 일까. 아니면 둘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사소한 차이로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글은 마치 싱싱한 제철 회나 과일이 그렇듯 글재주가 화려치 않아도 생생한 생각을 꺼내어 적어 놓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요리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재료는 평범한데 세세한 기술과 디테일의 차이로 대단해지는 요리도 있다. 된장찌개 같은 요리가 그렇다. 분명 나도 유튜브의 요리사가 그런 것처럼 된장, 호박, 두부 등 재료를 똑같이 쓰는데, 만들어내고 나면 뭔가 맛의 레이어(층)가 부족한 심심한 요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마 된장이 다르고, 불의 세기, 재료를 넣는 타이밍 등 조리법도 다르기 때문일 거라 짐작한다.

이 책의 경우엔 재료는 평범한데 풍부한 표현과 작가만의 감성으로 인해 글의 레이어가 두텁다고 할 수 있겠다. 글의 재료가 되는 단어와 문장 역시 연륜이 묻어 깊은 맛이 난다. 언뜻 무심해 보이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탄탄한 맛이다. 과연 작가는 작가다. 감성글이라는 이름으로 가벼운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 세상이라, 지금은 돌아가신 작가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마음 아닐까 하고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