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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Nov 22. 2021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복도

수능

다시 찾아온 수능 날, 나는 어김없이 고3 교실 복도를 떠올린다. 누구에게도 말 한 적 없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줄곧 그랬다.


인정관이라 불리던 우뚝한 별채에 자리 잡은, 매끄럽고 새하얀 대리석 바닥이 차갑게 미끌거리는 곳이었다. 얇은 컨테이너로 겨우겨우 만들어진 벽이 아슬히 서 있던 교실, 그리고 두 세명이 가로서면 가득 찼을 좁은 복도를 생각한다. 더 정확히는 그 복도에서 일어났던 일을 추억한다.


수능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찾아 지금은 까마득해 기억나지 않는 수능날 주의 사항 같은 것들을 들었더랬다.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그다음부터다.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양쪽 교실에서 긴장한 얼굴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서로를 응원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눈이 마주친 누군가를 부둥켜안으며 등을 토닥이고, 잘하라는 말과 잘할 것이라는 말을 건네었다. 아마도 내가 누군가를 꽈악 안아보았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 싶다. 우리 모두에게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있기를, 노력이 조금 미치지 못하는 곳에는 아주 조금의 행운도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더랬다. 항상 삭막하고 차갑게 느껴지던 그곳에서 나는 금세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주 알아채기 쉬운 일이었다. 한 명 한 명 안을 때마다 나도 몰래 귓볼이 후끈 달아올랐었으니까. 그때 나는 어떤 알 수 없는 행운이 나와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실제로도 그랬고.


매번 수능은 춥다고 하던데 이번만큼은 추위도 수능을 비켜갔다.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쉽다. 추위 속에서도 후끈히 달아오르는 온기를 느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치른 수능이지 않은가. 아마 그 어느 때보다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사연의 학생들이라면 내가 35살 먹은 아저씨라는 사실도 깜빡 잊고 누구라도 꽈악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오늘 밤만큼은 수험생도 아저씨도 편히 잠들 수 있는 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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