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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Feb 28. 2022

후회 없는 고백을 위하여

10년 전 나는 너에게 고백을 했다. 그리고 후회한다.


 오늘은 우리의 10번째 기념일이었다. 2012년 2월 22일. 기억하기에도 쉬운 이날 유현이와 나는 사귀기로 했다. 그사이 풋풋했던 우린 연인이 되었고 이제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 부부가 되어 매일을 함께 하고 있다. 어느덧 쌓아두고 종종 꺼내 보는 이야기도 한 가득이다. 어떤 추억은 너무 오래되어 희미해진 탓에 다시 꺼내어 보기라도 할라치면 기억 속을 헤집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우리 처음 사귄 날 만큼은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어느 춥지 않은 겨울, 영리했지만 서툴렀던 나의 고백과 둘 사이 작은 오해가 있었다. 지금 나는 그때 그 고백이 가져다준 한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러려면 내가 너를 처음 좋아하게 된 순간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 할지 모른다. 고백은 좋아하는 마음의 발현이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너를 향한 내 마음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나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도저히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시작된다는 점에서 봄이 오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해내는 일과 닮았고, 무지개에서 빨간색과 주황색의 경계를 집어내는 일과도 비슷하다. 짐작 가는 순간은 몇 있다. 제일 먼저, 당시 유행이던 갈매기살을 먹고 신촌의 밤거리를 함께 걷던 순간이 떠오른다. 싸리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날이 쌀쌀했는지 거리마다 살얼음이 얼어 있었다. 미끄러운 빙판길을 걷는 것을 유독 어려워하던 너는 그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내 옷자락을 잡았을 뿐인데, 나는 내가 그때 마침 옆에 서 있는 운 좋은 사람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가슴 설레었었다.

 어쩌면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영어 스터디 모임, 그곳에서 너와 제일 처음 눈을 맞췄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0평 남짓 칙칙한 스터디 룸에 채도 높은 파란색 코트를 입은, 눈 보다 하얀 얼굴의 네가 앉아 있었다. 자꾸 눈이 마주쳤고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더랬다.

 6개월 간의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너를 만났다. 그때의 나는 몸 바깥 어딘가에 금이 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작은 틈새를 비집고 네가 스며들어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마음 한 켠을 차지한 뒤였다.  

 

  마음의 시작은 모를지언정, 우리 관계의 시작이 어땠는지는  안다. 전부 나의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2 22, 홍대의 어느 바에서 너에게 고백하기로 했다.  잠시, ‘고백을 하기로   의미를 부연하고 싶다. 그것은 애매모호했던  마음의 테두리가 명확해지고, 크기가 자라나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나의 고백은 순간의 분위기에 취해서 나온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날이 오기까지 유현이를 10번은 넘게 만났다. 그리고 점점 간절히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연인이 되고 싶다고. 그러니 고백해야겠다고.

 술을 한잔 마셨던 것 같은데 어떤 술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당시 상황이 짐작 가지 않는 걸 보면, 그때 내 머릿속은 온통 고백의 타이밍을 잡는 것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아마도 미리 준비한 멘트를 계속해서 머릿속에 되뇌며, 언제쯤 이야기를 해야 하나 속으로 고민했을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한참을 속으로만 되뇌던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때의 내 고백은 이랬다.


  “유현아. 내가 요새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고 친구들에게 얘기를 하거든. 그런데 너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제 너를 여자 친구라 부르고 싶어.”


 나는 너를 좋아했던 것이 분명했지만, 그런 내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직설적인 것은 촌스러운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고백에 정답이 있을 리는 없지만, 그때의 나는 은유적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 만이 세련된 방법이라 믿었다. 언젠가 나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글로도 적은 적 있다.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말하지 않고, 싫은 것을 그저 싫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라고.

 나름 고심해서 만들어냈던 그날의 고백에 유현이는 좋다고 답을 했고, 다행히 내 입을 떠난 말이 다시 나에게 되돌아와 상처 입히는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어찌 보면 작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 짧은 말을 두고, 둘 사이 간단한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5년의 연애 뒤, 우리가 결혼한 후였다. 그때까진 나의 고백이 아주 성공적이었을 뿐 아니라, 썩 나쁘지 않고 심지어 근사했다는 믿음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었던 이유는 사실, 너에게 어쩌면 ‘그때 고백 참 괜찮았다’ 라며 칭찬받을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런데 자랑스럽게 얘기한 일에 뜻 밖에 타박이 돌아왔다.

 

 “오빠 근데 사실 그때 그 말은 좀 별로였어. 꼭 나를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데 소개할 말이 없으니까 사귀자는 말인 것 같지 않아?”

 

그 당시 나의 고백이 정작 듣는 이에겐 그닥 매력적이지 않게 들렸다니. 나는 당황해서 한참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가 그때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했어야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때 그 고백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한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그렇게 돌려 말하면 안 되었다. 설령 응답받지 못할지라도 조금은 민망하고 부끄럽더라도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했어야 했다. 정확히 표현된 언어만이 정확한 곳에 도달할 수 있고, 정확하게 응답받을 수 있다. 그때 던져진 내 말은 숨겨진 의도에도 불구하고 유현이의 마음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긍정의 대답까지 받아 내었지만 내 마음을 가장 원형에 가깝게 표현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있었던 셈이다. 지금에 와 다시 고백해야 한다면 나의 말은 이래야 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많이 생각해 봤는데, 너를 좋아해. 너와 있는 순간이 즐거워'라고. 나는 이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 부끄러워 우리 10번째 기념일의 카드에는 이렇게 적었다.


 - 유현아 정말 좋아해. 진심이야. 우리 처음 만났던 그때보다 더.


 이것이 요즘의 내 진심이다. 나는 유현이가 정말 좋고 점점 좋아진다. 예전의 내 마음과 비교해 보면 마치 그때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오늘 아내가 집을 잠시 비웠을 때, 꽃다발을 몰래 한 다발 샀다. 꽃은 계절을 물리적으로 선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선호하는 선물 중 하나이다. 아직 봄이 오려면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천천히 다가오는 계절보다 먼저 집안에 분홍빛의 봄을 들이고 싶었다. 향기가 좋은 꽃의 이름은 스위트 피, 꽃말은 추억, 즐거움이다. 앞으로의 우리 가족의 모든 일이 즐거운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곧 3월이다. 유난히 추웠던 우리의 겨울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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