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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Dec 27. 2023

한겨울의 여름휴가

  여름휴가를 겨울에 쓴 건 회사 생활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휴가도 가지 못 할 정도로 바빴다기엔 부끄럽고, 그저 휴가 쓸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고 할까. 마침 올해가 아빠의 칠순이기도 해서 나의 오래된 가족과 함께 여름의 나라 베트남으로 떠나기로 했다. 아내와 어린 아들은 한국에 남겨둔 채로.


  같이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현이는 이번 여행만큼은 한사코 사양했다. 나는 그게 참 많이 아쉬웠는데, 그건 순전히 지난 추석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온 오키나와 여행이 정말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도 냉장고 옆면에 붙여 놓은 그때 찍은 가족사진을 보면 괜스레 가슴이 벅차오르고 무슨 대단한 일을 성취한 것 마냥 감격스러웠다.


  재이와 떠난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사실 처음 재이의 의학적 상태를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늑했지만 볕이 들지 않던 방 안에서 매일 죽을 것처럼 우는 재이를 안고 바랄 수 있는 건 해외여행이 아니라 집 앞 산책하기, 함께 마트 가기 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 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시간은 나의 바람과 상관없이 흐르고, 인생은 내가 미처 예기치 못한 순간들을 깜짝 선물처럼 눈앞에 스리슬쩍 놓아주기도 한다. 오키나와 여행 내내 나는 처음 걸음마를 뗀 아이를 보는 부모의 심정을 — 내가 영영 못 볼지도 모를 — 비슷하게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재이는 종일 엄마 품에 안겨있긴 했지만 비행기도 대견하게 잘 탔고, 처음 몸을 맡겨본 이국의 바다에서도 울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에메랄드  비치라 이름 붙은 바다 위에서 작은 노란색 튜브에 목을 뉘이고,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꺅꺅 신난 소리를 내는 재이를 보고 있노라면 ‘아 행복하다’ 란 말이 나도 몰래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행복한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여행의 다른 면을 굳이 끄집어 내보자면, 불편하고 마음 쓰이는 일 역시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으레 그렇다고는 해도, 재이와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보통의 배는 늘어났다. 3년 동안 축적해 온, 재이 돌보기에 최적화된 우리만의 루틴을 벗어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고, 비행기를 타고, 밥을 먹고, 씻기고, 이동하는, 남들은 조금 불편하면 그만인 모든 일들이 우리에겐 도전의 연속이었다.

  특히 재이를 전담해서 돌보아야 하는 엄마, 유현이의 고생이 심했다. 여유 있어야 할 식사시간에도 씹어 먹지 못하는 재이를 위해 그나마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찾아 포크로 일일이 다져야 했고 —그 마저도 다질 수 있는 음식을 찾을 수나 있으면 다행이었다—일본 식당은 왜 이리 비좁은지 휠체어 겸 유모차를 놓을 공간이 없어 재이를 끌어안고 밥을 먹여야 했다.

  쉽게 쳐지는 재이의 컨디션을 수시로 살피고 돌보는 일 역시 유현이의 몫이었다. 그건 분명 엄마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종일 아픈 아이의 엄마로 존재하느라 유현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여행자가 되지는 못했다. 아마도 유현이에게 오키나와 여행은 재이로 시작해서 재이로 끝나는, 재이만 바라보는 여행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유현이의 거절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명색이 칠순 여행인데, 모든 가족이 재이만을 챙길 수는 없다고, 이번 여행은 재이를 위한 여행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언젠가 유현이는 넌지시 내게 말했다. 나는 무언으로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다음에는 꼭 재이 없이 여행 갈 수 있게끔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나는 정말 진심이었지만, 어쩐지 스스로가 조금 비겁하게 느껴졌다. 내가 여행을 즐기는 동안 유현이가 홀로 겪어야 할 힘든 시간을 잘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건 뭐랄까, 너무 구차했기 때문이었다.


  해서, 이번 나트랑 여행은 내겐 조금 이상한 여행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가긴 가지만 아주 가지는 않는, 몸과 마음 중 하나를 차가운 겨울 나라에 둔 채 반쪽만 여름으로 향한 여행이. 나는 행복했지만 아주 행복하지 못했고, 발길이 닿는 모든 순간 어쩔 수 없이 재이와 유현이를 떠올렸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한국은 유례없이 추웠다. 같은 기간 나는 선베드에 누워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트랑의 뜨거운 12월의 햇살을 맞으며 내가 태양광 패널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곳의 따뜻함을 세포 구석구석에 저장한 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뚫고 돌아가 아내와 아들을 꼭 안아주고 싶다고. 그러면 차곡차곡 쌓인 4일 치의 햇살이 듬뿍 쏟아져 내려 한동안 추웠을 너희를 포근히 감싸 안아줄 텐데.


  새벽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여전한 모습의 유현이가 서운한 내색도 없이 말갛게 나를 반겼다. 조금 피곤이 묻어 있는 얼굴로, 내가 보기엔 치울 것도 없어 보이는 깨끗한 거실을 계속해서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집을 떠난 지 고작 4일인데 아주 오래 떠나 있다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때 나는 유현이에게 무슨 말을 건네었던가.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 매트 위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내가 안고 온 나트랑의 햇살이 아니라 분명 우리 집, 과천의 햇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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