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다섯 번째 생일에

아빠는 너와의 작은 순간들을 사랑했었어

by 데미안

자그맣고 연약한데 겁까지 많아서 매일 아빠 품에 안겨 울기만 했던 우리 재이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부쩍 씩씩하고 용감해진 너를 보면 대견하고 그게 또 대단해서 자꾸 웃음이 나와.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르단 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란 걸 실감해.


재이야 기억나? 재이가 아직 아가일 때 말이야.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아빠가 가슴팍 언저리에 너를 올려 두고 조심조심 재워 줬었잖아, 쿵쿵 아빠 심장소리를 들려주면 보답이라도 하듯 한참을 품에 안겨 잠을 자곤 했었잖아. 그래도 잠 못 이루는 어떤 날엔 위이잉 소리 나는 주방 후드 앞으로 가서 흔들흔들 재이를 달래주었었지? 고개를 들어 어리둥절 아빠를 올려다보는 너와 눈을 맞추었었잖아. 재이의 작고 까만 눈동자가 온통 아빠 얼굴로 가득했었잖아.

재이 우리 아가.

아빤 그런 작은 순간들을 사랑했었어.


형아가 된 재이의 다섯 번째 생일을 온 마음으로 축하해.


아빠가 미처 몰랐는데, 지난 생일에도, 지지난 생일에도 네게 미안하단 말을 했더라구. 너무 많이 사랑하면 한없이 미안해진단 사실을 그땐 믿었던 것 같아. 그런데 올해는 미안하단 말은 하지 않으려고. 대신 재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줄 거야. 재이 덕분에 아주 많이 행복했거든.


아빠가 일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걸어 들어올 때 발을 구르며 반겨주던 너의 모습이 기억나. 그땐 정말 깜짝 놀랐었는데. 세상에 이런 기분도 있나 싶더라니까. 아빠가 먹여주는 밥이 더 좋다고 씨익 웃어주던 때는 어떻고. 책을 계속 읽어달라며 떼를 부리고, 한껏 배를 내밀며 짜증 내는 네 모습마저 아빠는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보통의 아빠들은 평생 알 수 없을 거야. 세상에서 오직 재이만이 줄 수 있는 아빠의 행복이거든. 행여나 그저 바라는 일 마저 너무 큰 욕심일까 싶어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순간들을 잔뜩 선물해 줘서 고마워.


재이야. 8월이 오면 너의 1년은 어땠을까 어김없이 궁금해져.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여름 방학은 신나는 일로 가득했었니? 아프고 괴로웠던 순간은 없었니? 사랑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배웠니? 무엇보다 있는 힘껏 행복했니?

말해주지 않더라도 그랬을 거라 믿고 싶어.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아빠는 올 한 해를 아주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아. 매년 올해만 같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던, 우리의 행복이 당연해졌던 해로.


재이야. 사실 아빠는 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그런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쉬울 때도 조금 있어.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이긴 한데, 가슴 한 켠이 조금 딱딱해지고 문득 쓸쓸해지기도 해.

하지만 재이야. 마냥 해맑은 너를, 허벅지에 부쩍 살이 오른 너를, 겁 많은 날 닮은 너를 내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아쉬워하기보단 매년 조금씩 크는 재이의 모습을 기대하려고. 그럼 매년 놀라운 일들만 가득할 테니까.


아빠랑 손가락 걸고 하는 약속이 뭔지 배웠지? 아빠랑 약속하나 할까? 앞으로 엄마한테 계속 환하게 웃어주기로. 엄마는 재이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재이가 때 부리지 않으면 엄마는 매일매일 행복할 거야.

아빠도 하나 약속할게. 너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순 없겠지만 재이의 등 뒤에 항상 아빠가 있을 거야. 그리고 번쩍번쩍 재이를 안아줄 거야. 다정한 목소리로 너의 이름을 부를 거야. 언제까지나.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올여름은 덥긴 해도 유난히 파랗고 초록 초록 하네.

마치 재이 같아.

생일 축하해 뚱재이 왕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