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웹툰 작가의 죽음을 추모하며
그녀는 웹툰 작가였다. 이른 둥이 쌍둥이 아들과의 일상을 담은 일상툰, ‘열무와 알타리’를 나는 좋아했다.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상이었다. 열무에겐 뇌성마비 장애가 있었다. 열무란 태명에 담긴 ’열 달 동안 무사히‘ 란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일상은 우연히 찾아온 불행으로부터 무사하지 못했다.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탔는데 네덜란드에 도착하게 된 여행. 그녀는 웹툰 첫 화에서 스스로의 삶을 그렇게 비유했다. 여행을 즐길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서 그만큼의 위로를 받아본 적은 없다.
웹툰을 보며 펑펑 울던, 강하지 못한 아빠가 있었다. 아빠가 된 지 겨우 한 달, 재이에게 뇌병변이 있단 사실을 안 지 얼마 안 되었을 적 이야기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 따위 없다지만 그 말이 모든 죽음에 똑같은 양의 애도가 담긴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어떤 죽음은 내게 특히 더 허망하다. 그녀의 죽음이 내게 그랬다. 건강상의 이유로 몇차례 휴재가 있었다곤 해도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상세한 이야긴 알 길 없지만 간밤에 잠에 들고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고.
같은 슬픔을 공유한단 측면에서 내게 열무는 곧 재이였고, 그녀는 곧 유현이었다. 그녀의 죽음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유현이가 죽고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무리 애써도 매울 수 없던 유현의 지난 빈자리를 떠올렸다.
유현아 재이는 내가 돌볼 테니 며칠 좀 쉬다와.
정말이지 진심이다. 내리쬐는 햇살이 따갑고, 홀로 웃는 웃음이 죄처럼 느껴지는 날, 나는 무엇보다 휴식을 선물하고 싶었다. 눈 뜨는 대로 일어나도 되는 아침의 여유와 쫓기듯 침대로 들어갈 필요 없는 저녁의 한가로움을, 계획 따위 세우지 않고도 휘적휘적 발길 닿는 곳으로 걸어 다니는 낭만과 세상 여기저기 여행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아주고 싶었다. 물론 호기로운 순간도 몇 있었다. 바람 좀 쐬고 오라는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오는 별 대단치도 않은 날들이. 그때마다 유현인 내가 선물한 알량한 자유의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다.
엄마가 떠나고 없는 집에서 재이는 어김없이 아팠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하던 대로, 하란대로, 조심조심 주의를 기울여도 꼭 무슨 일이 생겼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거나, 토하고 컨디션이 떨어졌다. (병원에 가도 딱히 원인이 없는 전반적 처짐과 무기력증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그러면 모든 뒷감당은 아내의 몫이 되었다. 며칠을 고생하는 유현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마치 가해자가 된 듯한 자책을 느끼곤 했다. 밀려오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지면, 괜히 해야 할 집안일을 찾아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절대 편히 쉬면 안 되는 사람처럼, 스스로 내린 벌에 매달리는 수행자처럼.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엄마가 없으면 왜 항상 재이는 아플까, 지난날을 찬찬히 복기해 봐도 답을 찾지 못했던 우린,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과학적이진 않지만 꽤나 설득력 있는 추론이었다. 엄마가 곁에 없기에 생기는 어떤 부재감, 심리적 공백 같은 것이 재이의 상태에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고. 워낙에 예민한 재이와 그런 재이에게 세상의 전부인 엄마. 둘 사이 특별한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통의 엄마가 아이라는 작은 섬에 연결된 수많은 다리 중 가장 튼튼하고 넓은 다리라면,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는 그 비밀스러운 섬에 겨우 가닿은 좁고 얇은 흔들 다리다. 겨우 한 명만 건너갈 수 있는, 다리라고 부르기도 힘든 가느다란 줄. 그 줄을 건너지 않고선 아이와 교감할 수 없다. 한 땀 한 땀 정성껏 연결해도 쉽게 끊어지는 그 줄을 잇기 위해 유현인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을 속 깊은 곳에서부터 흘려야 했다.
아파도 아프지 못하고 다쳐도 다치지 못했다. 코로나에 걸려도, 사랑니 자리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느라 전신마취를 했어도 말벌에 물린 사람처럼 볼이 붓고 핏물이 흘러도 재이의 곁엔 빈틈없이 유현이가 있었다. 질병으로 기억되지 않는 보통의 고된 날도 예외 없었다. 마치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아파선 안 되는 사람처럼 재이를 사랑했다. 그렇게 재이는 엄마가 아픈 줄도 모르고 모든 순간을 무사히 지나쳐 왔다.
재이에 대한 유현의 사랑을 과장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엄마라면 응당 감당해야 할, 혹은 감당할 수 있는 당연한 일로 쉬이 여기고 싶지도 않다. 그래선 안된다. 그건 분명 돌봄이나 보살핌의 차원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설령 단 한 번을 정확하게 응답받지 못할지라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일방향의 사랑. 무조건적인 애정이었다.
이해하지 못해도 책을 읽어주고,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다. 기억하지 못할 하루를 재잘재잘 설명해 주었다. 실상은 엄마 혼자 그리는 것일 테지만 무릎 위 재이와 함께 그림도 그렸다. 하얀 도화지 위의 재이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씩씩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소풍을 가고, 바닷속 친구들과 수영도 하고, 공룡과 싸우는 용감한 용사가 되어 하늘을 날았다.
유독 억울한 날, 울컥 새어 나온 울음이 눈가에 그렁그렁해도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재이가 영영 세상의 차가운 얼굴을 모르도록. 웃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반응하지 않아도 그렇게 했다. 늘 한결같은 온도로 주기만, 계속 주기만 했다.
결국, 엄마가 만든 줄을 타고 재이의 마음이 아장아장 건너오기 시작했다.
이제 재이는 반응하고 교감한다. 엄마의 장난을 장난으로 알아차린다. 잠들기 전, 엄마의 장난스러운 손짓과 과장된 말투에 우스워 죽겠다는 듯 깔깔대며 웃는다. 나도 슬쩍 포개어져 함께 뒹굴고 싶은 행복한 순간이다.
책을 읽어 달라 놀아 달라 제법 때도 부린다. 부족하지만 자기 의사를 표현하게 되었다. 스무고개 놀이라도 하듯 하나씩 원하는 것을 짚어나가면, 재이는 이잉 하는 짜증이나 빙긋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한다. 끝내 마음을 몰라주면 불쑥 서운해져 입꼬리를 내리고 울먹이다 와앙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전혀 고되지 않은 이유는, 그런 평범한 울음조차 예전엔 만난적 없기 때문이다. 오직 죽을듯 자지러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막막한 울음 많이 재이의 전부 였던 때가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재이의 이 모든 변화는 말해주고 있었다. 유현이가 만든 다리가 결국 재이에게 가 닿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길이 되었단 사실을. 누군가는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전부 때 되면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발달의 증거 아니냐고.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거저 얻어지는 기적 같은 건 우리 사는 세상엔 없다고. 너무 간절하면 또다시 운명에 배신당할까 두려워 속으로 삼키던 바람들이 이제야 이루어진 거라고.
이제 나도, 이모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재이와 감정을 나눈다. 완벽하지 않아도 몇 번이고 그럴 수 있는 건 모두 엄마가 만든 다리, 그 가느다란 줄 덕분이다.
며칠 뒤 인스타에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화장터, 아빠 품에 안겨있는 열무와 아빠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알타리의 뒷모습이었다. 세 남자의 시선이 인사라도 하듯 떠나는 엄마에게 향한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읽는다.
아마도 아빠, 그리고 열무와 알타리는 괜찮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잘 클 것이다. 자주 슬프고 서럽겠지만. 대체로 행복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또 바라고 싶다. 엄마가 만들어낸 다리, 그 얇고 가느다란 줄은 사용할수록 강해지고 두꺼워지는 다리니까. 그 다리가 있는 한 행복은 결코 닿을 수 없는 희망 같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부디 마음 놓고 쉬시길.
유영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