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에 건강이 짐이 되지 않도록

by 데미안

수술은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밖에서 기도하던 엄마가 말하길, 생각보단 빨리 끝난 거라고 했다. 회복실에 들어간 지 채 오십 분이 되지 않아 내가 나왔다고 했으니 도합 두 시간 여 걸린 셈이다.


병원이야 내 집처럼 익숙했어도 수술은 처음이었다. 몇 년 전에 생긴 담석이 결국 문제가 되어 통증이 심해졌는데, 절제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했다. 비교적 간단하고 역사도 깊은 수술이라 나는 망설임 없이 담낭을, 그러니까 쓸개를 제거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평소 겁 많은 나지만 걱정이 크진 않았던 이유는, 이기종과 엄마 역시 이미 같은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둘 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큰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간단한 수술이니 나 역시 금방 회복할 자신이 있었다. 일부러 앞당겨 수술일을 잡았다.


처음 만난 수술실의 날카로운 공기가 코끝에 생생하다. 수술실의 온도는 놀랍도록 서늘했다. ‘차가운 수술실’이란 표현이 단순 비유가 아니었다니. 덩치 큰 사람이 누우면 옆으로 몸이 삐져나올 정도로 폭이 좁고 차가웠던 수술 베드도 수술실의 삭막한 분위기에 일조하는 것 같았다. 나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베드 위 누울 자리를 잡다가 하마터면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마취 전 짧은 대기 시간, 팔다리가 묶인 채 멀뚱멀뚱 집도의를 기다리는 내 얼굴 위로 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2년 전 같은 수술을 받았던 이기종이었다가, 또 엄마였다가, 다시 무릎 수술을 받았던 아빠가 되었다가, 사랑니 자리 물혹을 제거했던 유현이었다가, 결국엔 재이가 되었다.

필연적으로 미안해진 나는 눈을 꾹 감았다. 이윽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섭단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담낭 절제술은 맹장 수술만큼이나 유서 깊은, 검증되고 안전한 수술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입원기간 내내 간단치 않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건 고통의 절대적 크기 때문이라기 보단 내가 타고난 ‘인자약’, 다시 말해 ‘인간 자체가 약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놀랍게도 (그전엔 미처 몰랐다) 나는 유달리 통증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나의 막연한 자신감엔 마치 머릿속 스파링이 그런 것처럼 ‘통증’이 배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릇 통증이란 상상 속의 무엇이 아닌 실재하는 증상이다. 회복실을 나서자마자 느껴졌던 배꼽의 통증은 (배꼽을 통해 로봇팔이 들어가 우측 상복부의 담낭을 절제한다) 스멀스멀 기어올라 복부 전체로 퍼졌고, 끝내 등까지 번졌다. 나는 굳이 참을 필욘 없다는 의사의 말을 핑계 삼아, 두세 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찾았다. 주치의는 이런 나를 두고 엄마에게 이런 말을 전하기도 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고통이 10인 사람들은 (진짜 아파서 못 견디겠는, 진통제가 시급한 사람들은) 딱 얼굴만 보면 알거든요. 지금 환자분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표정이 좋아요.

그 말을 듣고도 진통제를 더 맞을 수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뭔가 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괜한 걱정만 끼치는 것 같았다. 내 기준엔 많이 아팠지만 그날 밤을 어떻게든 견뎌내자 신기하게도 조금씩 통증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말을 이토록 실감했던 적이 있었을까. 병실에 누운 체 무용해져 버린 나는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도는 어렴풋한 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입원 전 아내가 해준 말이었다.

오빠 이제 정말 건강 신경 써야 해. 오빠 혼자만이 아니라 재이도 생각해야지. 열심히 회복해야 돼.


대부분의 질병은 유전 혹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한다. 암, 당뇨 같은 질병이 그렇다. 암환자를 진료하는 나의 의사 친구는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암은 다 걸릴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하든 젊든 늙었든 누구나 걸려” 내가 알기론, 담낭염 역시 유전의 요소가 일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력으로 지켜낼 수 있는 어떤 영역이 있을 것이다. 좋은 것을 먹고, 나쁜 것은 먹지 않고, 과식하지 않고 잘 자고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이 대단친 않아도 건강하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노력들이.


오늘로 수술이 끝난 지 딱 일주일 째다. 나는 약한 사람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건강해지려 한다. 오직 나를 위해서는 아니다. 건강한 사람이 곧 강한 사람이고, 강한 사람이 가족들을 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시절 깔짝 거렸던 운동을 마르지 않는 적금으로 착각한 나는, 너무 오랜 시간 내 건강을 흥청망청 소비했다. 그 결과, 내 몸은 완전히 파산한 지 오래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금 되돌리는 데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수술 후 실로 오랜만인 엄마의 보살핌 아래 푹 쉬며 열심히 회복한 덕분으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고 건강한 느낌이다. 아직 남아 있는 수술 부위의 통증과 소화 불량은 점점 좋아질 것이다. 세상에 아파도 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 테지만, 다른 누구보다 ‘내가’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애써 쌓아 올린 행복에 건강이 짐이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