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칠순을 축하하며
많고 많은 엄마의 일화 중 엄마가 죽을 뻔했단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학창 시절 놀러 간 계곡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걸 어떤 아저씨가 살려주셨다고요. 다시 살게 된 인생, 열심히 공부하겠다 다짐까지 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었다고요. 그 말을 하고서 민망한 듯 웃는 엄마의 얼굴은, 당시 오십이 넘는 나이였지만, 제 눈엔 꼭 그 시절 소녀 같아 보였습니다.
웃음도 눈물도 많은, 가끔씩 호들갑에 야단법석인 엄마가 칠십이라니. 어쩌면 저는 엄마만큼은 영영 나이 들지 않을 거라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칠십 번째 생일을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시큰해지는 건 아마도 그래서겠죠.
엄마에 대해서 말하라 하면 저는 모든 걸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이내 아무 말하지 못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칠십 년 세월의 막막함 때문은 아닙니다. 엄마의 삶을 얘기하려면 사랑에 대해 얘기해야만 하니까요. 누가 사랑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요. 우리 형제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그중에서도 특별했습니다.
쌍둥이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입원한 엄마를 보러 담당 교수는 물론, 인턴이며 레지던트며 온갖 의사들이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동네에선 남산만큼 부른 배를 보고 아직 산달이 한참 남았는데도 애는 언제 나오냐, 이제 곧 나오겠다 묻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자연분만은 꿈도 못 꾸고 제왕절개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1987년의 제왕절개는 일상적 선택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는 큰 수술에 가까웠습니다. 뱃속의 우리가 너무 커서, 엄마는 흉터를 적게 남기는 가로 절개 방식 대신 세로로 배를 갈라야 했습니다. 엄마 배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훗날 잦은 병치레를 안긴 수술이었습니다.
1987년 8월 10일 뜨거운 여름. 그렇게 2.9kg, 3.1kg의 건강한 우리가 태어났고, 그로부터 시작된 엄마의 자식 사랑은 겨울에도 찬물만 나오는 반지하방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식을 줄 몰랐습니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저는 기억에도 없는 그 시절 엄마의 사랑을 떠올리곤 합니다. 커다란 안경을 쓴 빼빼 마른 엄마. 그 옆에 포동포동 살이 오른 아기 둘이 발그레한 볼을 뽐내며 방실방실 웃고 있습니다. 저 퉁실한 아기들을 어떻게 홀로 둘씩이나 돌볼 수 있었던 걸까요. 어쩌면 엄마를 양분 삼아 우리만 무럭무럭 자란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애들이 깨끗한데 뭘 그리 맨날 씻기냐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타박에도 엄마는 매일 같이 우리를 목욕시켰다고 했습니다. 가전도 육아 용품도 변변찮던 시절. 부엌 싱크대에서 찬물을 받아 한 솥 끓이고, 그 밑에 쭈그려 앉아 뜨신 물을 부어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닦아주는 일이 어찌 고되지 않았을까요.
새벽에 자다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울음이 미처 소리로 터져 나오기도 전에 젖병부터 물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힘든 줄도 몰랐다는 엄마의 말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그런 사람이니까요.
한 번은 엄마에게 물어본 적 있습니다. 어릴 적 잘 먹어 통통했던 우리가 비만이 될까 봐 걱정되지는 않았느냐고요. 그런 걱정은 해본 적 없고 그저 잘 먹으니 좋기만 하더라. 엄마의 그 싱거운 대답을 저는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사랑이란 건 늘 이런 식입니다. 엄마 이름 한번 불렀을 뿐인데, 이미 지나가버린 날들을 줄줄이 눈앞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과거의 시간들과 마주할 때면, 저는 자주 마음이 저릿합니다. 엄마를 향한 고백 같은 말들이 심장가득 차올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엄마. 저는 요즘 왜 이리 시간이 야속한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87년의 어느 날과 26년의 오늘을 맞붙여 반으로 꾹 접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접힌 세월의 페이지를 한 장씩 다시 펼쳐보니 그곳에 엄마 인생은 없고 온통 우리뿐이네요.
학창 시절 내내 우리보다 먼저 일어나 한 숟갈이나 뜨면 다행인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 우리가 등교하면 그제서야 한숨 눈 붙이던 엄마. 우리 좋아하던 백화점 지하 식당 돈가스 가게가 문을 닫자, 기어코 비법 소스를 배워와 근사한 돈가스를 만들어주던 엄마. 우리를 너무 아낀 나머지 어릴 적 그 흔한 심부름 한번 편히 시킬 줄 모르던 엄마.
어쩌다 심부름으로 사 온 평범한 상추. 그게 뭐 그리 특별하다고 “맛있지 맛있지” 묻는 어린 아들들의 생색에 장단 맞춰주던 엄마. 유치원 등원 첫날, 유달리 겁 많던 우리를 하굣길 중간 일찌감치 마중 나와 서있던 엄마.
열심히 일한 아빠 덕분에 해외여행 갈 기회가 여럿 있었지만, 어렸던 아들들이 눈에 밟혀 공짜 해외여행도 마다했던 엄마. 그러다 마흔두 살에 처음 간 호주 여행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며 추억하는 엄마.
제게 엄마는 그렇게 전부를 주고도 항상 미안해하고, 매일 아쉬워하던 사람입니다.
엄마. 사실 다 알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짜증만 냈습니다. 매번 말로는 우리 신경 좀 그만 쓰라고,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하나 없다 말했지만 전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내 슬픔에 나보다 더 아파하며 밤낮없이 기도한 엄마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단 걸 어떻게 제가 모를 수 있을까요. 엄마가 불안을 떨치려 밤새 그리던 그림이 한점 두 점 거실을 채우고, 우릴 생각하며 키운 난이 두 번 꽃을 피우는 동안, 엄마의 걱정과 염려를 불빛 삼아 제게 닥친 슬픔의 긴 터널을 무사히 지나쳐 왔단 걸 엄마는 혹시 알고 있을까요.
그런데 엄마. 세상엔 주는 사랑 말고 받는 사랑도 있다고 합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마음 졸이게 했던 아들들은 어느새 훌쩍 커 번듯한 어른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우리 소개를 하면 “어머니 참 좋으시겠다” 란 부러움 섞인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제 자식 걱정은 그만 내려놓고, 부디 마음 편히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무릇 행복이란 걱정하는 마음속에서 뿐 아니라, 함께 웃는 짧은 시간 속에서 탄생하기도 하니까요. 엄마가 이제라도 받는 사랑의 즐거움을 알 수 있도록 저도 많이 노력해보려 합니다.
엄마의 칠십 년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제가 적은 사랑의 마음이 부디 잘 전달되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사랑합니다.
- 사랑과 애정을 담아 둘째 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