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에 남은 계절
피아노를 치며 살아온 시간이
어느새 반세기를 넘었다.
연습은 늘 곁에 있었고
피아노는 삶의 중심에 있었지만,
정작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완성된 곡보다는
지나간 시간의 감각이었다.
오래도록 연습을 해도
자신 있게 칠 수 있는 곡은 없었고,
매일 건반 앞에 앉아도
마음에 드는 연주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피아노 뚜껑을 열고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연습은 결과로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삶의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이 기록을 시작했다.
한 달에 한 곡,
계절에 하나의 음악을 얹어
연습이 아닌 시간의 흔적을 남겨 보기로 했다.
이 글은
작가의 연보를 정리하기보다
그 음악이 내 삶의 어느 지점에 머물렀는지를 적는다.
잘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치기 위해서.
열두 달이 지나면
이 곡들은 레퍼토리가 아니라
한 해를 건너온 나의 풍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