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쌓는 마음들에 대하여

보여줘야 볼 수 있는 것들

by Dami

어제는

눈이 부시게 푸른 겨울 하늘이었다.


기온은 영하 19도.

살을 에는 추위였지만

맑고 투명한 햇살 덕분에

창밖의 풍경은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웠다.


그 햇살이 아까워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장갑 낀 손끝이 시리고

외투 밖으로 나온 무릎은 얼얼했다.

무엇보다 눈이 몹시 시렸다.

가릴 수도 없는 햇살이었다.


그런데도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바람과 함께 스며드는 빛이

몸속 깊은 곳까지

맑게 씻어내리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사정이 다르다.

기온은 영하 3도.

어제보다 16도나 높은

포근한 날씨다.


하지만 햇살이 없다.

창밖 풍경은

괜히 한 걸은 물러서 있다.


점심을 먹고

어제와 같은 길을

비슷한 시각에 걸었다.


더 가벼운 차림으로 나왔지만

몸은 덜 추운데

마음은 자꾸 더 움츠러들었다.


왼편 영하 19도 / 오른편 영하 3도


밖을 나설 수 없을 만큼 추워도

햇살이 있는 날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만큼 따뜻하지만

햇살이 없는 날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햇살이다.


집 안에 있어도

햇살이 들어오면

마음은 열리고,

아무리 좋은 계절이라도

빛이 없으면

마음은 닫힌다.


어제 산책길에서

확 트인 눈 덮인 공원을 바라보다

공원 앞 집들 가운데

펜스를 친 집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프리미엄을 주고 공원 앞 집을 고를 때에는

드넓은 풍경을 누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집은 왜 담을 쌓았을까?


펜스를 치는 이유는 대부분의 이유는

아이거나,

강아지가 있어서다.


하지만

그 집은

둘 다 아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 쪽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공원에서는 집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보이는 쪽이 싫은계다.


내가 보는 풍경이 중요한지,

사람들이 나를 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내 것을 내어주지 않고서는

남의 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내가 그저 값없이 누리는

세상의 들꽃도

불어오는 바람조차도

어느 하나

내 것은 아니다.


보고, 맡고, 누리려면

그만한 몫의

열림을 감수해야 한다.


칼바람 속에서도

햇살을 맞고 싶다면

바람을 견뎌야 하고,

확 트인 풍경을 눈에 담고 싶다면

커튼을 열고 나 또한

조금은 보여야 한다.


우리 옆집은

강아지 때문에 높은 담을 쌓았다.

그 담은

그들만을 가둔 것이 아니라

이웃인 나까지 함께

고립시켰다.


나는

그 고립이 싫다.


내 앞마당을

기꺼이 내어주고서라도

담을 허물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많이 불편하더라도

열어주고 내어주는 쪽을 택한다.

보이는 쪽으로

걸어가 보려 한다.

관계든, 풍경이든

끝내 남는 것은

닫아 지킨 것보다

열어 내어 준 쪽이라

생각이 들어서다.








작가의 이전글월요일은 오지도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