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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 Oct 22. 2020

'과학자와 그의 여자친구'라니

생태비판학 및 테크노페미니즘에 입각한 <우주생명체 블롭>(1988) 분석

2018년 상반기에 씀.


 

헐리우드의 괴수영화는 많은 경우 반인반수 형상의 괴물과 인간 집단의 대립 구도를 그린다. 여기서 반인반수 형상이란 괴수의 형태를 결정짓는 전반적인 요소가 인간 혹은 짐승, 즉 기성 생물체의 형태에 기대고 있음을 의미한다. 괴수를 구성하는 세부적인 요소들이 인간/짐승의 신체 기관과 매칭 가능하거나 약간의 형태 변형을 거친 뒤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블롭>의 괴수는 완전히 새롭다. 이 괴수는 오늘날 액체괴물이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시판 유통되는 ‘슬라임’의 원형에 가깝다. <더 블롭>에서 괴수 블롭은 부글거리고 끈끈하고 미끌거리며 옅은 적색 외형을 한 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닥치는대로 사람을 잡아먹고, 섭취한 영양분의 양에 비례하여 기하급수적으로 몸집을 키운다. 


<더 블롭>은 1958년 미국의 감독 러셀 S. 더그튼 주니어에 의해 처음으로 개봉했으며, 한국에서는 <물방울>이라는 이름의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더 블롭>은 이후 1972년 래리 해그먼에 의해 슬라임 괴물이라는 모티브만 차용하여 <비웨어! 더 블롭>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그리고 원작 출시30주년이 되던 1988년, 척 러셀이 원작의 플롯과 세부적인 설정까지 그대로 가져와 동명의 리메이크작인 <더 블롭>을 제작하였다. 이는 한국에 <우주 생명체 블롭>이라는 제목으로 수입되었다. 1988년작 <더 블롭> 리메이크의 개봉 30주년인 2018년 현재 <더 블롭>은 한미합작으로 재차 리메이크 제작을 준비중이다.[1] 본 글에서는 괴물의 모티브를 차용해왔지만 내용상의 연관이 비교적 느슨한 <비웨어! 더 블롭>(1972)를 논외로 두고 동명의 세 작품인 원작(1958), 리메이크(1988), 재-리메이크(201?)의 비교, 특히 원작과 리메이크를 대조 분석하고 그 차이를 조명하여 리메이크판이 갖는 의의를 도출해보고자 한다.


<더 블롭> 시리즈의 기본적인 플롯은 다음과 같다. 마을에 운석처럼 정체 미상의 물체가 떨어지고, 남녀 2인조로 구성된 청소년 주인공이 최초 피해자인 노인을 발견하여 부모와 경찰 등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아무도 이들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 동안 블롭의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뒤에야 비로소 심각성이 인지된다. 주인공은 우연히 블롭이 냉기를 기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블롭은 소화기 공격을 받고 저체온증에 의해 파괴된다. 이는 두 번의 리메이크를 거쳐오면서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설정들이며, 초반의 병원 장면이나 영화관 습격 장면 등은 카메라의 앵글과 숏 사이즈, 소품 같은 세부 사항들까지 똑같이 재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더 블롭>(1958)(이하 원작)에서의 괴물 블롭이 우주에서 난데없이 떨어진 외계 생명체로 설정된 것과 달리 <더 블롭>(1988)(이하 리메이크)의 블롭은 극의 후반부, 우주 행성에서 미 당국이 연구 중이던 생화학 실험 프로젝트 중 지구에 불시착한 유기 생물로 밝혀진다. 이는 <더 블롭>에 생태비판학적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하며 이룩하고자 했던 기술 발전이 역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도착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더 블롭>은 상당 부분 봉준호의 <괴물>(2006)과 닮아 있다. 환경을 파괴하는 첨단 과학 연구의 이면이 괴물을 낳고, 괴물의 실체를 숨기고 인간을 희생시키려는 공권력과 거대 자본 시스템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소시민적 주인공이 자력으로 공동체를 구제한다는 것이다. 


원작과 리메이크 사이의 또다른 차이점은 2인조로 구성된 주인공의 기여도에 있다. 원작의 경우 조금 반항적이지만 올곧은 기개를 가진 남자 주인공 스티브와 그의 여자친구 제인이 팀을 이룬다. 원작의 많은 시퀀스에서 스티브는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제인은 스티브가 떠난 장소에서 대기하다가 돌아온 그를 위로해주거나 그가 겪은 일을 반추하도록 설득하여 각성하도록 만드는 정신적 재생산의 기제처럼 기능한다. 극의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스티브-제인은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 사건을 수행하는데, 상술한 루틴에 의해 이 자동차는 마치 이동식 가정과도 같은 역할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스티브는 출퇴근하는 가장과도 같은 모습으로 병원, 경찰서 등을 방문하고 자동차로 돌아오며,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제인의 정신적 북돋움에 의해 기운을 회복하고 다음 태스크를 수행한다. 제인은 철저히 스티브의 부차적인 역할을 해내는 데 그치며, 비약하자면 스티브라는 ‘본체’에 연료를 주입하는 보조 전원처럼 기능한다. 중후반부에 이르러 이들이 자동차를 벗어나 도보로 이동하는 시퀀스에 접어들면 제인은 이같은 기능마저 상실한다. 냉동창고 장면이나 블롭에게 둘러싸인 카페테리아의 지하창고 장면의 마지막 쇼트는 언제나 공포에 질린 제인을 스티브가 품에 안아 다독이는 것에서 페이드아웃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반면 리메이크작에서는 전형적인 미국 백인 남성 가부장제에서 조신하게 자라온 여성 주인공 메그와 반항적 기질의 브라이언이 팀을 이루어 진행된다. 원작과 달리 메그는 자신과의 첫 데이트 중에 블롭에 의해 희생된 남학생 폴의 죽음을 계기로 가부장적 가정의 얌전한 외동딸 포지션에서 처음으로 벗어나 각성하며, 폴과 함께 블롭을 최초로 발견한 증인인 브라이언을 자신의 팀에 ‘영입’한다. 또한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주도권을 가진 것은 메그이며 블롭에 대항할 수 있는 주요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 역시 메그의 주체적인 활동에서 비롯된다. 브라이언은 메그의 동업자 내지는 조력자의 롤을 담보하고 있는데,미국 정부의 생화학무기 실험팀이 이들을 감언이설로 구슬려 차량에 감금하고자 시도하는 시퀀스에서 최초로 이 구도가 전복된다. 그러나 이는 그가 실험팀의 거짓말을 알아채고 탈출한 것과 달리 얕은 통찰로 그들을 맹신했다기 보다는, 전 생애동안 가부장적 교육을 받고 자란 메그가 공권력의 조력을 곧장 의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판단이 지체된 것으로 보인다. 실험팀의 음모를 깨닫고 차량에서 탈출한 메그는 브라이언과 합류하여 야외 극장에서 블롭에게 잡아먹힐 뻔한 어린 동생들을 하수로를 통해 탈출시키고자 앞장서며, 맨홀을 통해 마을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또한 원작에서 주인공군의 증언을 믿지 않던 경찰권력이 블롭이 냉기에 약하다는 스티브의 정보를 받고 시민들을 동원하여 블롭을 물리친 것과 달리, 리메이크작에서는 블롭의 약점을 깨달은 메그가 직접 블롭을 향해 소화기를 분사하여 그를 처치한다. 



주디 와이즈먼(2004)[2]은 대부분의 테크놀러지가 남성적으로 설계되었음을 꼬집으며 테크노사이언스의 재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또, 조니 시거(1993)는 “환경 위기는 단지 물리적 생태계의 위기만이 아니다. 환경 위기가 뜻하는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권력과 이익, 제도적, 관료적 협정 그리고 환경 파괴의 조건을 만드는 문화적 관습의 하나라는 것”[3]이라고 주장하며, 이 문화적 관습이 남성 중심적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4] <더 블롭>의 원작이 표방하는 여성의 정체성은 남성적으로 설계된 기술과, 이에 의해 구성된 여성의 위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더하여 리메이크작은 첨단 생화학 기술 실험과 단순한 온도 조작을 대조 시키면서 보다 자연적인 방책의 승리를 그린다. 와이즈먼이 새로운 기술의 물신화가 페미니즘 정치를 무력화시킨다고 지적한 바와 더불어, 리메이크작은 메그라는 여성 프로타고니스트를 앞세워 직접 자연적 솔루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기술의 결정권이 변화되고 있다는 시대상황을 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와이즈먼에 의하면 기술은 고정적이거나 불변한 것이 아니며, 상술된 기술 인식과 설계 단계 부터의 변화를 통해 남성중심적인 기술 문화를 구시대의 영역으로 밀어넣고 노동과 젠더의 재배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원작과 리메이크의 두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점이라면 역시 괴물 블롭의 형질일 것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블롭은 점액질의 슬라임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슬라임은 본디 이끼나 해조류에서 발견되는 원생균류가 군집하여 물컹물컹하고 끈적한 점액질 형태를 이룬 유기체로, 실제 곤충류 가운데 슬라임으로 분류되는 생물이 존재하기도 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RPG 게임 등의 판타지 장르에서 즐겨 사용된다. 괴수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괴수’가 점액질의 슬라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곧 괴수의 무성(性)적 성질, 그리고 모럴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괴수영화, 심지어는 근자의 괴수영화에서도 반인반수의 형상을 한 괴물이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에 강간의 알레고리가 있다는 사실이 종종 지적되어왔다. 실제로 <에이리언>의 각본가들은 시나리오 집필 당시 에이리언이 우주선 선원을 강간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가 기각된 바 있으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강간과 그로 인한 부적절한 임신의 상징인 ‘페이스 허거’[5]의 첫 희생자가 남성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6] <더 블롭>에서 사용되는 괴수의 형질에는 어떠한 인간적 모티브도, 짐승의 모티브도 들어맞지 않는다. 오히려 촉수에 닿은 모든 것을 흡입하는 파리지옥이나 세팔로투스 같은 식충식물에 가까워 보인다. 비정형의 몸체를 넓게 펼쳐 먹잇감을 감싸고 그대로 녹여 흡수시키는 블롭의 사냥법에는 성차에 입각한 불쾌한 은유가 없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괴수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잔존하고 있는 강간의 알레고리를 타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물과의 어떤 유사성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인간/짐승의 형상을 한 괴수가 사람을 해치거나 살상하는 장면을 보며 관객이 느끼는 애매한 도덕적 죄책감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롭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떤 동물적 특징도 갖고 있지 않은 블롭에게는 물론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으며, 잔인하게 찢겨나가는 희생양을 전시하는 대신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먹이사슬을 재배치한다. 


이처럼 <더 블롭>(1988)에는 생태주의적 관점과 여성주의적 관점이 동시에 드러나 있다. 이는 인간, 특히 남성 권력 중심의 지배 구도 하에서 배제되고 지워져 있던 소수자들의 문제를 전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 생태비판, 즉 에코페미니즘이라고 독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은 60년대 이후 근대성 비판이 전개됨에 따라 그 내부에 여성과 환경을 동시에 식민화시키는 근본적인 억압 기제를 가부장구조로 파악하고, 자본주의와 결합된 가부장구조가 남성적 정신과, 남성적 정신이 정복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상정하는 무한한 확대의 대상인 자연환경, 여성, 제3세계를 이항대립적으로 양분한다고 말한다. 논의 내에는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을 단절시켜야 하는지, 오히려 재확인해야 하는지에 따라 몇 가지의 견해가 충돌하기도 한다.[7] 에코페미니즘 진영 일부에서 고대 그리스 여신들을 논의에 적극 포함시키며 사용하는 ‘어머니 대지’나 ‘자궁으로서의 바다’ 같은 표현들에 있어서는 스스로 비전을 한정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에코페미니즘은 산업화된 생활양식 대신 자연과 여성에 대한 관념을 제고케 하며 모든 생명체의 상호의존성과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새로운 윤리와 정치를 추구한다는 분명한 의의를 가진다. 


원작과 대비되는 <더 블롭>(1988)의 특질들에서, 우리는 조니 시거(1993)가 “계급, 인종, 젠더는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던 것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현재 다시 리메이크되고 있는 <더 블롭>은 ‘다시’ 1988년의 블롭이 이루어낸 성과들을 역행하여 무력화시킬지도 모르겠다. 현재 각종 영화정보 고지에 등록된 재-리메이크판의 시놉시스에는 ‘과학자와 그의 여자친구’가 블롭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설명이 언급되어 있다. 이를 주지했을 때, <더 블롭>의 1988년 리메이크작은 올해로 30년이 된 작품이지만 그간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에서 아주 천천히 진행되어온 ‘괴수영화’의 진보를 이미 한참 이전에 이루어낸 것처럼 보인다.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더 블롭>의 재-리메이크판 제작이 1988년 리메이크의 도약과 성과를 훼손시키지 않기 바라며, 추후에 30년 간격의 세 블롭을 다시 한 자리에 소환하여 논해볼 수 있기를 기약해 본다.


      

[1] 한국 영화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에 참여했으며, 1958년 제작된 원작의 프로듀서인 잭 해리스와 <툼 레이더>, <익스펜더블2>의 사이먼 웨스트, 키노33 엔터테인먼트도 이름을 올렸다. 주연은 사무엘 L. 잭슨과 리암 니슨이 맡을 예정이며 2016년 9월 크랭크인했다는 기사 이후로는 별다른 진행사항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2018년 6월 기준)

[2]  <테크노 페미니즘- 여성, 과학 기술과 새롭게 만나다>, 주디 와이즈먼, 궁리, 2009

[3] Toxic Struggles, ‘Creating a Culture of Destruction’, Joni Seager, New Society Publishers, 1993

[4] 같은 책

[5] <에이리언>에 등장하는 외계 괴물의 명칭

[6] 영화백서: 불멸의 SF 호러 시리즈 <에이리언> 제작비화, 캠퍼스 씨네21, 2017

[7] 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창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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