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기쁨과 쓰는 슬픔

- 이제는 계약된 건이 없어요

by 강늘바람

2024년이 끝난지 보름이 지나서야 작년의 일들을 정리해보고 새해를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1월 1일이 시작하자마자 독감으로 나흘을 일어나지 못했고, 앓고 난 후 보양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인지 빈혈이 와서 버스도 타지 못하다가 천천히 회복되었기에 나에게는 이제서야 새해가 시작인 것 같다.


24년에는 세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는데, 4월 청소년소설 <입은 것들의 말하기>를 시작으로 7월에 동화책 <엄마 머릿속 아귀씨>, 12월 초 동화책 <무서운 집 재밌는 집 이상한 집> 이 마지막으로 나왔다. 모든 책을 다 올해 쓴 것은 아니고, 청소년소설만 올해 쓰고 나왔고 나머지 두 권은 3년 정도 걸쳐 써온 것들이 올해 몰려서 나오게 된 것이다. 평균적으로 따지고 보면 일 년에 한 권 정도 쓴 셈이다.

청소년소설 <입은 것들의 말하기>는 패스트패션을 소재로 한 네 편의 단편을 묶은 연작소설이다. 처음에는 초등학생 동화책으로 구상하였다가 패션이라는 소재를 생각하여 청소년으로 연령을 바꾸었다. 스스로 옷과 외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나이의 주인공으로 시선을 가져가고 싶었다. 주인공들은 모두 내가 만난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엄마 머릿속 아귀 씨>는 몇 년 전에 그림책으로 구상하여 써놓았던 짧은 원고를 장편동화로 새로 쓴 것이다. 엄마의 우울증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쓴 이야기이고,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며 엄마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간부터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 나 역시-기질을 물려받은 것인지-우울증을 오래 겪었다. 지금도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몰려오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는 것을 안다. 영원히 우울하고 슬프고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소재로 한 <무서운 집 재밌는 집 이상한 집>은 제목처럼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단편집이다. 내가 쓴 동화책 중에 가장 동화책스러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아이의 마음으로 쓴 책이다. 아이가 바라는 집, 아이가 좋아하는 집. 이 책을 쓰면서 이상한 일이 시작되었는데 글을 쓰면서 울기 시작한 일이다. 이전까지는 단 한번도 그런 기억이 없다. 이 책부터 이상하게 글을 쓰면서 자꾸 운다-잘 썼다고 생각해서 우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민망한 생각은 할 수 없다. 내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사람이기도 하고 사람이 아니기도 하다-에 이입해서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책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잘 찾아나가길, 이제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로써 계약되어있는 책은 모두 끝이 났다. 첫 책이 나오고 십 이년 만에 해야만 하는 일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막막하기도 하고 아주 새로운 글을 써보겠다고 신이 나기도 한다. 운동도 시작하고, 밀린 책들을 먹어치우듯이 읽어나갔다. 올가 토카르추크와 리디아 데이비스,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연구하듯이 읽고 있다.


24년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첫째 고양이가 많이 아픈 것이 가장 큰 일이다. 밍밍이는 이제 심장약을 먹으면서 점점 노쇠해져간다. 고양이 심장병은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기에, 동물병원 선생님은 호스피스라고 생각하라하였다. 지금 먹는 약도 혈액순환을 돕는 약일 뿐, 쇼크로 발작이 오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하였다. 처음 약을 먹기 시작한 작년 4월부터 지금까지 밍밍이를 끌어안고 수많은 밤과 낮을 울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갑자기 죽을까봐 일도 가기 싫었다. 어쩔 수 없이 일을 나갈 때는 캠을 켜놓고 나가지만 막상 스마트폰으로 캠을 켜보지도 못하였다. 카메라 속에서 고양이가 아파하고 있으면, 지금 당장 달려가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들을 모두 참고, 견디고, 우리는 아직도 씩씩하게 살아있다. 밍밍이는 지금도 내 다리 위에 앉아 있다.


고등학교 2학년들을 만나는 6개월의 프로젝트도 잘 마무리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해냈나 싶은 시간이다. 매주 학생들과 만나서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찍고 마지막에는 낭독회와 전시회도 열었다. 함께 해온 예술인들도 모두 고생을 많이 했다. 학생들도 열심히 참여해주었다. 2학년 2학기부터는 실질적 고3이라고 인지하기 시작하는데, 예체능 수업시간을 자습으로 쓰지 않고 실제 수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고마웠다.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난지 3년차에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학교에서의 예술 교육에 대한 나름의 철학도 몽글몽글 만들어진다. 학생들에게 느끼는 가장 큰 깨달음은 겉모습은 다 큰 어른 같지만 수많은 일들이 아직 처음이라는 점이다. 처음으로 연극 대본 읽어보기, 처음으로 나의 슬픈 일 말해보기,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 해보기, 처음으로 무대에서 조명과 박수를 받아보기. 이 시간이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지 내가 알 수 있는 행운이 오면 좋겠다.


희곡을 다시 쓰기 시작한 점도 개인적으로 큰 변화이다. 2012년 서울연극제 참가작을 시작으로 희곡 작가로 데뷔를 하였다가 아동문학을 주로 쓰게되면서 개점휴업 상태였는데, 다시 희곡을 쓸 힘이 생겼다. 가을에 한편의 장막 초고를 써놓았고, 현재는 인형극을 쓰고 있다. 가장 조심할 점은 또다시 자아비판과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것인데-예를들어 이런 소재는 흔해, 이런 인물은 기존에 너무 많이 나왔잖아, 이런 스토리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걸, 요즘은 넷플릭스적 스토리가 대세잖아, 하는 생각이 끝없이 나를 지배한다-그럴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것은 오로지 독서와 산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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