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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담 Dec 27. 2015

연말을 보내는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외도 한번 없이 십 년 넘게 스타벅스만 찾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매장 음악. 12월도 되기 전부터 연말이라고 우기고 싶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기특하게도 이곳엔 벌써 캐럴이 들린다.


싸늘해진 공기에 한 번 놀라고 들리는 캐럴에 한 번 놀라고. 스타벅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래 어느덧 연말이다. 한 해 중 가장 춥고 가장 따뜻한 때.


징글맞은 한 해를 보냈을 때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해를 보냈을 때에도 그저 술만 먹다 한 살 더 먹게 되었을 때에도 연말은 늘 좋다. 들뜨고 설렌다.


어쩌면 참 이상한 일인 게,

연말이야말로 ‘이별’ 그 자체가 아닌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이. 열두 달을 가득 채운 수많은 이야기들과 우리는 곧 이별해야 한다.


그런데 왜 좋지?



너무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는 반드시 온다는 걸.

12월이 지나면 1월이 온다는 걸 우린 몇 살 때 깨닫게 되었을까. 다섯 살? 여섯 살?


어쨌든 그걸 알게 된 후 한 해가 지나면 새해가 온다는 약속은 단 한 번도 어겨진 적이 없다. 그러니 그 어떤 이별에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해주려고 이 글을 쓴다.


연인과의 이별을 앞둔 당신에게.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떠나간 걸 알게 된 당신에게.

가까이 지내던 친구와의 관계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달은 당신에게.

부모님으로부터 하루하루 멀어지는 일이

마치 죄를 짓는 듯 느껴져 괴로운 당신에게.


당신의 맘을 아리게만 하는 무심한 그 사람은 당신의 인연이 아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도 당신 생각에 눈물이 핑 돌고 마는 애틋한 연인이 저기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당신은

지금 그 사람과 이별해야 한다.


십 년 후 당신 곁엔 가족보다 가깝고 연인보다 애틋한, 가장 오랜 한 명의 친구만이 남아 있다. 세월의 부침에도 늘 같은 자리에서 당신의 곁을 지켜준 한 명의 친구.


그 소중한 한 명이 곁에 남기까지

당신은 앞으로도 여러 명의 친구와 멀어져야 한다.


부모님과 멀어지는 건 어른이 되는 0번째 단계다.

나이만 성인일 뿐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못 이룬 상태의 삶은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의 보태짐에 지나지 않는다.


아빠의 딸, 엄마의 아들이 아닌 그저 독립된 한 명의 인간이 되어야 비로소 당신의 진짜 인생은 시작된다. 부모 자식 간의 홀로서기는 늦어질수록 서로 불행만 더해질 뿐이다.



캐럴이 흐르는 스타벅스에 앉아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원고 쓰러 스타벅스 가는 길이라고 문자 했더니 어느새 건너편에 와 앉아있는 남자친구. 속 썩이던 그 엑스 놈이랑 안 헤어졌으면 못 만났다.


술 먹자고 아까부터 카톡 하는 친구 놈. 15년 전엔 친한 친구가 한 반에 열두 명이었는데 ‘15년 산’ 한 놈이 남기까지 나는 매년 한 명 이상의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멀어졌다.


마음먹으면 오늘 밤에라도 당장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10시 통금’을 외치던 엄마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나는 대학시절 네 번의 가출을 했고 엄마와의 절연을 선언한 건 공식적으로 세 번쯤 된다.


그 어떤 이별도 실은 그리 슬퍼할 일이 못된다.

단지 깨달으면 된다.

12월이 지나면 반드시 1월이 온다는 걸.




가장 좋은 것은
반드시 이전의 덜 좋은 것과 결별해야만
당신을 찾아온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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