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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담 Feb 02. 2016

'서른 즈음에'를 부르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

한 살 더 먹을 즈음에

새해가 밝았다. 구정을 앞두고 있으니 우리 모두는 곧 무를 수 없는 한 살을 먹게 되겠지. 연초. 한 살 더 먹을 즈음. 이맘때면 누구나 '나이 먹는 일의 의미'를 두고 나름의 상념에 잠긴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 귀결되든, 나이 먹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그다지 경쾌하지 않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상념에 잠긴다. 그 '경쾌하지 않음'에 대하여.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나에게 나이 묻는 걸 어려워한다. '어…' '…'로 시작되는 물음은 대부분 나이에 관한 것들. "이것 참, 여자한테 나이 묻는 게 실례인데." 먼저 선수를 치는가 하면, 괜한 빈말은 늘 따라붙는다. "그 나이로 안보이십니다, 하하"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건 언제부터 실례가 됐을까. 익어가는 과일더러 어딘가 설익어 보인단 말이 언제부터 칭찬이 됐을까.


싱그러운 젊음을 향한 욕망의 시작점에 관해서라면 답은 간단하다. ‘처음부터’ 그랬을 터. 봄 꽃도 좋고 가을 낙엽도 좋다지만, 꽃놀이는 가도 낙엽 구경은 안 간다. 우리 모두 그걸 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들 봉오리 타령이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이도 절반쯤 피어난 이도 일평생 봉오리로만 보이고 싶어 아우성인 게 동안 열풍 아니던가. 서른에게도 마흔에도 십 대 같아 보인다는 이야기가 칭찬이 된 지 오래다.


“내 뿜은 담배연기처럼 또 하루 멀어져 간다”며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겨우 ‘서른 즈음에’ 참 별꼴 인가 하면 술집에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은 다 큰 ‘어른’의 입에서 나오는 농담은 근 십 년째 그대로다.


“다들 봤지? 오늘 내가 쏜다!”


언제까지나 미성년으로 보이고 싶은 이상한 신드롬을 모두가 앓고 있다. 가는 세월이 왜 그렇게 아프기만 할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나이 든다는 건 사실 좋은 점이 참 많은 일이다. 든 것 도 쥔 것도 많아진다. 연애도 우정도 일도 사랑도 수월해진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나란 인간을 더 잘 알게 된다는 것.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훨씬 너그러워진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1년이 무던히 지 나간다. 이 참 좋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 살이라도 어린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리다는 건 가진 게 없어도 곧잘 용서받는 때이니까.


나이 드는 게 그다지도 싫은 건 나이에 걸맞은 걸 갖지 못한 현실과 마주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그 현실을 만든 게 나의 게으름이라는 것도 알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싱그러웠던 때로의 ‘리턴’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흩어지기 전의 상태로 ‘리셋’하고 싶은 마음.


한편 나이 얘기에 더 민감한 건 언제나 여자 쪽인 듯보인다. 좋은 신랑감 만나려면 한 살이라도 어려야 한다는 둥 나이 든 여자는 잘 팔리지 않는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여자들이 곧잘 하기도 한다. 여자를 횟감에 비유한 농담에는 파르르 떨면서 누가 나이를 물으면 죄인이라도 된 듯 한숨부터 쉬고 있지 않은가. 어린 여자를 찾는 남자들은 질색이라면서 연예인 A양의 동안 유지 비결에는 귀가 ‘쫑긋’이다.


?


왜일까. 세상이 변했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시집만 잘 가면 장땡이던 세상은 슬슬 뒤꽁무니가 보이고, 매력이니 능력이니 센스니 재능이니 경쟁 요소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더 힘들어지기 전에 여자의 경쟁력은 그냥 ‘어리고 예쁜 거’ 정도로만 해두자고 다 같이 끌어내리려는 수작이다. 부디 속지 말자.


이른바 몸값이라는 건, ‘연차’가 늘수록 올라가고 ‘연식’이 오랠수록 떨어진다. 더해가는 내 나이는 연차일까 연식일까. 이십 대 후반에 이르러 살짝 뒤를 돌아보니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나의 흑역사들. 허송세월로 보낸 수많은 날들이 가슴을 콕콕 찌른다. 무수히 반복되던 실수와 후회들. ‘어리다’는 말의 어원이 왜 ‘어리석다’인지 알 것만 같다.


그러니 이제 더 잘해야지. 올 한 해는 알토란같이 채워 넣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계란 한판’이 꽉 찰 날도
꽤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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