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두고 드리는 당부
단톡 방에는 연휴 내내 혈육에 대한 다양한 저주가 끊이질 않았다. 친구 중에는 환갑이 넘은 큰아버지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놈도 있었다. SNS상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명절에 오랜만에 얼굴 보는 친척들로부터 겪는 정신적 고통이란 게 다들 참 만만찮은 모양이다.
무심히 남 얘기인양할 수 있는 건 정말로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인 탓이다. 어렸을 땐 내게도 모두가 한 데 모이는 명절다운 명절이 있었지만, ‘그런 명절’이 내 인생에 막을 내린 지는 이제 거의 십 년 가까이가 되었다. 추억으로 남은 명절의 기억은 내내 따숩기만 하다.
그런데 명절이 내게 아스라이 따스한 기억으로만 남을 수 있었던 건, 이제 와 생각해보면, 거의 전적으로 할머니가 고3 가을에 돌아가신 덕분이었다.
어렸을 적 친척들이 모이면, 위로 다섯 명의 사촌오빠와 아래로 남동생 하나가 있는 가운데 나는 유일한 여자아이였고 어른들이 던지는 “반에서 몇 등이나 하니” 따위의 질문에도 자신 있는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꽤 잘 나가는 꼬맹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가을이었다. 나는 그 해 겨울에 있었던 대학입시에 실패했고, 잘 나가던 꼬맹이는 시간이 흘러 그저 그런 어른이 되었다. 심지어 이십 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름도 괴이쩍은 이른바 ‘프리터’로 살고 있으니, 요컨대 나는 십 년 새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아주 많은 인간이 된 것이다.
어쨌든 집안의 지주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는 더 이상 명절에 한 데 모이지 않게 되었고, 나는 - 원치 않는 질문들에 의해 괴롭혀지는 - 흔한 명절의 악몽으로부터 가까스로 비껴 날 수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지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대입에 실패한 나로 인해 엄마는 자신의 언니와 절연을 했다. 수능이 치러진 당일 저녁, 이모가 엄마에게 전화해 지나치게 많은 ‘질문’을 한 탓이었다. "잘 봤다니?" 한 마디면 되었을 것을, 가채점은 해보았는지, 각 영역의 점수는 몇 점인지, 모의고사 때만큼은 나왔는지, 못 봤으면 대체 얼마나 못 봤다는 건지. 이모는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예의도 눈치도 없이’ 너무 많은 질문을 던졌고 각자 나름대로 심사가 꿰진 두 사람은 이후 몇 년 간 전혀 교류하지 않게 되었다.
명절이란 두 글자가 우리에게 어쩐지 지긋지긋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든 것.
내 친구 놈을 ‘어르신을 세게 한 대 쥐어박고 싶어 하는’ 불경한 인간으로 전락시킨 것.
나의 엄마와 이모를 기어이 절연하게 만든 것.
그렇다. 범인은 바로 질문이다.
질문은 독설보다 불편하고 저주보다 징그럽다. 독설을 들으면 말한 이를 미워할 수 있다. 저주를 받으면 그 악의에 대고 욕해줄 수 있다. 질문은 도무지 그렇지가 않다. 대다수의 질문은 미움도 악의도 아닌, 그저 말간 호기심에서 생겨나는 게 아닌가. 심지어 ‘걱정’이라는 선의를 담은 경우마저 있다.
그러니 어떤 질문을 받은 것이 너무너무 싫을 때, 그 너무 싫은 이유는 대부분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거나 대답하기 싫은 나 자신이 미운 것으로 결론이 난다. 인간은 남이 미울 때보다 스스로가 미울 때 가장 고통스러운 법. 그래서,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질문이 싫다.
물론 개중에는 내가 당당히 대답할 수 있는 (그래서 꼭 대답해 주고 싶은) 질문이 던져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대답하기 쉬운 질문보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늘어가는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만의 사정이 아닐 테지. 그러니 이젠 정말로 전 우주적인 합의에 이를 때가 되었다.
우리 제발 서로 묻지 말자.
한편, 질문을 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당신으로부터 질문을 받게 될 사람의 불편함 때문만이 아니다. 실은 무엇보다 당신을 위해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던지는 질문은 종종 당신의 세계관을 드러내곤 하는데, 그 언뜻언뜻 드러나는 세계관이 당신을 아주 후지게 보이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는지?
예를 들어 가장 대표적인 건 결혼에 대한 질문. 당신에게 결혼은, 이를테면 “나이가 차면 하는 것” “교제 기간이 일정 수준 이상에 다다르면 하는 것” “못하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결혼은 “언제가 됐든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 “오랜 연인이 있어도 안 할 수 있는 것”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일 수 있다.
만약 그런 이들에게 “결혼은 언제 하니?” “사귄 지가 몇 년인데 언제까지 연애만 하려고?” “올해는 좋은 소식 들을 수 있니?” 따위의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이 무척 촌스런 사람이 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다.
꿈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 ‘장래희망을 쓰는 란’이 10대에게만 주어지던 건 이미 옛날 옛적의 이야기다. ‘직업’이란 게 이십 대 즈음 결정되던 시대도 막을 내렸고 ‘평생 직업’이란 단어가 ‘삐삐’와 거의 동급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그런데 "앞으로 뭐하고 살려고?" "하고 싶은 건 있니?"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닌데 뚜렷한 직업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타인의 눈에 과연 어떤 사람으로 비치겠는가. 무엇보다 꿈, 그 귀하디 귀한 걸 함부로 묻는 무심함은 절대적으로, 절대적으로 유죄다.
“대학을 졸업했으면 곧 취직을 해야지.”
“취직했으면 적당한 짝을 찾아 결혼해야지.”
“결혼했으면 늦기 전에 애를 낳아야지.”
우리 모두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과제들은 어느새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거나 되고 있다. 특히 취직, 결혼, 출산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것들이 되었다. 이를테면 일종의 명품 같은 게 된 것이다.
누군가에겐 샤넬백을 드는 것이 의미 있는 성취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롤렉스를 사는 것이 꼭 해내야 할 과제일 수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일 뿐. 요컨대 요즘 세상에 대뜸 타인에게 '언제 결혼할 거니' 묻는 건, 느닷없이 '언제 샤넬백을 살 거니'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제발 웬만하면 묻지 말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일곱 자의 진리도 실은 타인에 대한 쓸데없는 호기심을 버리라는 선조의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꼭 해야만 하는 질문'이란 건 없다. 비수가 될 오지랖만이 있을 뿐이다.
자, 당신이 이번 명절 혹은 다른 언젠가 누군가의 질문으로 인해 품게 되었던 날카로운 불쾌함. 그 뾰족한 감정의 조각을 버리지 말고 가슴에 꼭 품어 두자. 그리고 당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묻고 싶을 때 그 조각을 꺼내어 스스로의 허벅지를 찌르는 것이다. 무언가를 묻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꾹꾹 아프게 찌르자.
나의 호기심이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날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열심히 찌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