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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담 Feb 03. 2016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고? 뻥치시네

나쁜 남자론, 그 오류가 쓰인 전말

나쁜 남자.

이 네 글자를 들으면 조금 예민해 지곤 하는데, 그건 아마 ‘나쁜 남자’에 관해 만들어지는 세간의 수많은 헛소리들 때문일 것이다.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고? 뻥치시네



말 많고 탈 많았던 맥심 9월호의 화법을 빌려보자면,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고? 나는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나쁜 남자’ 타령을 입버릇처럼 하는 여자들은 어딜 가나 있는데, 사실 그녀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번번이 자신에게 나쁘게 구는 것일 뿐.


그녀가 홀랑 반한 남자. 그는 그녀보다 경쟁력 있는 수컷일 가능성이 높다. 하여 쉽사리 쟁취할 수 없거나 관계의 결정권이 그녀에게 없을 가능성 역시 높다. 관계의 강자인 남자 쪽에서도 이걸 눈치채고 있을 테니 인간의 본성상 의도하지 않더라도 여자에게 못되게 굴 가능성은 높아지겠지. 다시 말해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반한 남자가 주로 나에게 나쁘게 구는 것이다.


착한 남자에게는 매력을 못 느낀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착해서 매력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애초에 매력을 못 느낄만한 남자들이 나에게 착하게 군다. 마음만 먹으면 컨트롤할 수 있고 딱히 사귀고 싶지도 않은 남자들이 나한테 저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건 슬프지만 모두가 아는 진실이다.



잘해주는 ‘매력적인 좋은 남자’와 속 썩이는 ‘매력적인 나쁜 남자’가 있으면 여자는 당연히 전자를 택한다. 치명적인 놈이 나한테 잘하기까지 하면 당연히 그놈이 좋지. 허나 마성의 매력남이 나에게 한없이 잘해주는 그런 강력한 행운이 흔할 리는 없다.


그러니 선택지는 ‘더럽게 매력 없지만 (나한테 잘하는) 좋은 남자’ 혹은 ‘미치게 매력적이지만 (속 썩이는) 나쁜 남자’가 되기 일쑤고, 그렇다면 둘 중 여자를 사로잡는 건 자연히 후자가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는 오류가 쓰인 전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쁜 남자’여서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나쁜 남자 코스프레, 그 참을 수 없는 애잔함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는 그 망할 오해 때문인지, 종종 나쁜 남자를 ‘연기’하는 남자들을 발견한다. 그것이 곧 인기 있는 남자가 되는 비결일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 남자를 볼 때의 감상은 뭐랄까, 욕쟁이 콘셉트를 표방하는 어느 맛도 없는 국밥집주인 할매를 볼 때 느껴지는 그 애잔함과도 같다.


우리가 굳이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가는 이유가 뭔가. “하이고 이 화상들, 어서 뒤졌나 했더니 안 죽고 살아있었네. 남기지 말고 다 처묵고 가 이 눔 들아.”


찰진 욕지거리 속에서 느껴지는 구수함. 말은 이렇게 해도 이 할매가 맘은 참 따스한 할매네 느끼게 하는 정겨움. 걸쭉한 육두문자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노련함. 그런 게 다 어우러져야 비로소 욕쟁이 할머니가 ‘완성’되는 거고 음식 맛은 두말할 것 없이 기본이다.



전라도 어느 장터 이름난 욕쟁이 할매의 ‘욕지거리’만 그대로 따와 손님한테 다짜고짜 “야 이 썅놈아” 하면 그런 장사가 흥할 리 있을까.


나쁜 남자 코스프레도 마찬가지다. 마음에도 없는 까칠한 대사를 남발하는 ‘나쁜 남자 연기’가 그 남자의 인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단언컨대 없다. 매력이 전혀 안 느껴지는 여자가 온갖 싸가지 없는 대사를 날리며 콧대 높은 철벽녀를 연기하는 걸 볼 때 당신이 느껴야 할 그 황망함. 나쁜 남자를 연기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심정도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나쁜 남자 1차 탈락자



내 친구 Z양은 지난해 어떤 남자에게 심각하게 빠졌었다. 외모는 전혀 자기 취향이 아닌데 ‘진짜로’ 나쁜 남자인 것 같아서 미치겠다나. 뭐가 그렇게 진짜로 나쁜 것 같으냐고 물어봤다. 남자가 인도에서 뭘 사다가 서유럽 국가에 내다 파는 일을 한다는데 이름도 세 개씩 쓰고 뭔가 음성적인 일 같아서 미친 소리 같겠지만 영화 같고 너무 두근거린단다.



그러나 그녀의 열병은 오래가지 못했다. 첫 동침의 밤, 그의 예상외로 작고 귀여운 고추, 아니 이건 너무 민망하니까 추고라고 하자. (남자들도 슴가라고 하잖아?) 그 작은 추고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란다.


제까짓 게… 나빠 봤자 얼마나 나쁘겠어.

  

자, 작아서 매력이 떨어졌단 얘기가 아니다. 그 ‘작은 걸’ 보니, 가슴을 뛰게 한 그의 그 음성적인 일도 그다지 음성적이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보나 마나 별로 나쁜 일도 아니었을 거란다. 아아, 추고가 작은 남자는 나쁜 남자도 될 수 없다니? 그녀의 주장이 비과학적이어서 더욱 그럴듯하게 들렸던 건 나의 기분 탓이었을까. 하긴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찬 베일이나 드라마에서 나쁜 남자를 연기한 김남길 등을 떠올려 봐도 그들이 고개 숙인 남자라는 상상은 어쩐지 많이 어색한 게 사실이다. 침대를 장악할 능력도 부재한 남자가 뭔가 대단한 나쁜 일을 해낼 거라고는… 믿기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대체 나쁜 남자의 정의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여자들이 칭하는 나쁜 남자란 ‘내 가슴’을 아리게 하는 남자다. 치명적인 그에게 온 마음을 사로잡혔으나 내 것이 되어주진 않을 것 같기에 가슴이 몹시 아리다는 의미다.


영화에 나올 법한 음성적인 일을 하는 것 같다든지 추고가 아주 클 것 같다든지 그냥 잘생겼다든지, 마음을 사로잡히는 건 모두 저마다의 이유다. 분명한 건, 그냥 나쁜 짓을 하는 남자가 나쁜 남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랄 맞은 언행을 일삼으며 진짜 ‘나쁜 짓’을 밥 먹듯 하는 남자라면, 나쁜 남자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개새끼라고 부른다.


여자들의 마음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나쁜 남자를 만나고 싶은 욕망으로 늘 근질근질하다. 아린 게 아린 줄 알면서도 늘상 누군가로 인해 아리고 싶다. 남자들이 부디 그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 주길 바라는 타는 목마름으로 이 글을 쓴다.



남자들이여,
내 가슴이 아리도록
더욱 매력적으로 나빠져달라.








2016 맥심 MAXIM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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