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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담 Jul 08. 2016

고맙지 말입니다, 아니 고마워요.

나의 군대 체험기

지난달 내 인생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난생처음 군대라는 곳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지금껏 나는 유독 군대와 연이 없었다. 여자라서 당연한 게 아니냐고?


절대! 군으로 가족을 떠나보내고 한 무더기의 친구 동기 선후배를 떠나보내고, 한창 풋풋한 시기에 연인과의 생이별까지 겪으며 그 누구보다 절절한 간접의 군대 체험을 하는 게 대한민국 여자들이다. 그러나 나는 남자 형제도 없고 내가 만난 남자들은 다 이미 전역한 예비군이었으니, 나는 군복 입은 남자를 가까이에서 본 일조차 딱히 없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연병장이 군 계급의 하나인 줄 알았을 정도.


그런 내가 군대에 발을 들이게 된 건, 국군 장병 인성교육이라는 프로그램에 강연자로 초대받게 된 덕이다. 열차를 타고 화천으로 향하던 날 아침의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오지랖이 넓어 살면서 적잖은 이색 경험을 해보았지만, 그날만큼 긴장된 날이 없었다. 부대에 도착하고 장병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을 때에는 심지어 손끝마저 부르르 떨렸던 것 같다.


화천가는길


그날의 행사는 오전 오후로 나뉘어 한나절 내내 진행되었는데, 중간에 있는 점심시간에는 ‘짬밥’이라는 것을 먹어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뭐 짬밥도 짬밥이지만 동그란 테이블에 앉은 나의 우측으로 전투복 입은 대대장님, 중대장님이 주르륵 착석해 계셨으니, 이쯤 되면 여러분들도 이게 왜 ‘인생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는지 이해하실 것이다.    


국군 장병 인성교육이라는 프로그램에 강연자로 다녀왔다.


마침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의 인기로 전 국민이 다나까 체를 구사하던 때였다. 부대 내에서도 역시 그 드라마가 단연 화제였던지 대대장님은 '본방사수'는 잘하고 있느냐는 말로 대화의 문을 여셨다. 그런데 이후 이어진 대대장님의 말씀이 무척 신선했다. 드라마가 군대를 소재로 삼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등장인물들이 경직된 말투를 사용하며 도리어 군대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요즘 부대에서는 ‘다나까’ 사용을 지양하고 오히려 ‘해요-체’를 권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졌다.


<진짜 사나이>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 역시, 시청자에게 군에 대한 친숙한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건 좋지만, 교관이 교육 시간에 지나치게 엄하게 굴며 윽박지르는 식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군대에 대한 편견들이 참 많다. 예우는커녕 군인들은 군바리라는 말로 비하되기 십상이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는 둥 군인을 희화화하는 농담도 흔하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은 모두 군대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만물 군대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서열 문화, 복종적  위계질서 등은 분명 군대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장병들에 대한 멸시로 이어지는 건 부적절한 처사가 아닐까. 군대 문화가 사회 전반에 끌어들여진 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공동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군으로 강연 다녀온 일을 주위에 이야기하니 다들 좋은 일 하고 왔다며 잔뜩 칭찬을 해주었는데, 글쎄. 가기 전에는 분명 ‘좋은 일 하러 간다’는 인식이 내게도 있었는데 다녀와보니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게 영 머쓱해졌다. 감사해야 할 건 오히려 내 쪽이라는 걸 내내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가웠던 용사님들과 한컷


군복 입은 송중기에 대한 열광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장병들에 대한 조롱과 농담이 넘쳐나는 사회적 분위기에 이제는 문제의식을 가져볼 때가 아닐까. 언젠가는 나 역시 그 농담의 무리에 동참했던 적이 있는 것 같아 부끄럽다.


그 철없었음을 반성하며, 소중한 이십 대의 어느 날에 입대해 열심히 군 복무 중인 청춘들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해본 일이 있다. 내가 만약 군대에 가야 한다면, 몇 살에 입대하는 게 (그나마) 가장 덜 괴로울까? 한 살 한 살 각각의 나이를 찬찬히 생각해보니, 스물은 스물이어서 스물둘은 스물둘이어서 스물다섯은 스물다섯이어서,... 이십 대는 도저히 입대를 상상할 수 없는 나이들로만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소중한 이십 대의 어느 날에 입대해 열심히 군 복무 중인 용사들, 누군가의 아들이고 동생이고 연인인 그들이 모두 건강하게 군생활 마칠 수 있기,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Bait> 5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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